주형욱 5단은 한바탕 꿈을 꾼 것 같다. 이창호 9단을 상대로 완승하는 꿈을…. 실제로 완승할 만큼 우세를 확보한 적도 있었는데 눈을 번쩍 떠보니 이 9단은 저 멀리 앞서 있다.
모든 건 백 ○를 보지 못한 탓이었다. 수십 수를 멋지게 두던 주 5단이 백 ○를 보지 못한 단 한 번의 불찰로 구렁텅이에 빠진 것은 억울한 일일 듯하다. 하지만 프로기사라면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한 수씩 번갈아 두는 바둑에서 한 수를 놓친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가. 그래서 한 수마다 혼신을의힘을 다할 수밖에 없다.
거꾸로 보면 ‘가’와 ‘나’가 아니라 ○로 두는 발상은 이 9단이 왜 정상급에 서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우하 귀에서 낙상한 흑은 힘겹게 백을 쫓는다. 흑 41로 치중한 것이 묘한 수. 흑이 무리하는 것 같은데 막상 백의 응수가 쉽지 않다.
만약 백이 겁을 먹고 참고1도 백 1로 받으면 흑 10까지 흑이 짭짤하게 이득을 봐 졸지에 미세한 형세가 된다. 백 42는 정수. 흑 43으로는 눈 딱 감고 참고2도 흑 1에 두고 싶은데 백 4, 6으로 슬금슬금 나오면 흑이 견디기 힘들다.
백 44로 백의 승리가 결정됐다. 흑 63으로 귀의 사활을 추궁했지만 백 68로 귀가 살았다. 주 5단은 깊은 한숨과 함께 돌을 던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