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에 박힌 크리스털에서 영롱한 빛을 뿜고, 입에서는 폭포수를 토해내는’ 자이언트의 얼굴 속으로 들어가면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크리스털 세계가 펼쳐진다. 미로를 따라 연결된 14개의 방에는 각각 유명 예술가의 크리스털 작품이 전시돼 있다. 바닥과 천장, 4개 벽 전체가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크리스털 돔(dome)’은 그중에서도 백미.
전설 속 알프스의 수호신 ‘자이언트(Giant)’를 형상화한 이곳 ‘크리스털 월드’는 크리스털 전문기업 스와로브스키가 오스트리아 티롤 주의 바텐스 마을에 세운 복합문화공간이다. 자이언트가 지배하는 지하 세계를 모티브로 8만5000m²(2만5000여 평)에 이르는 공간을 모두 크리스털로 꾸몄다. 전시 공간 외에도 세계 최대 규모의 쇼핑 공간, 알프스 전경을 만끽할 수 있는 카페, 야외 공원 등을 갖춰 매년 70만여 명의 관광객이 몰린다. 크리스털 월드를 창조해 낸 스와로브스키 측은 “크리스털로 만든 상품을 판매할 목적이 아니라 크리스털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국내에도 브랜드만이 아닌 문화를 전파하는 기업들의 복합문화공간이 늘고 있다. 소비자는 문화를 체험하고, 기업은 고객들의 경험을 통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컬처노믹스(Culturenomics)’ 공간을 향유해보자.
○ 감성 충전소, 복합문화공간 뒷모습, 무심한 시선, 일상적 도시 풍경…. 낯선 곳에서 느끼게 되는 이방인의 감성을 제3자적 입장에서 즐겨보면 어떨까. ‘갤러리 로얄’에서 다음 달 14일까지 전시하는 노준구 이효연 작가의 ‘섬웨어(Somewhere)’ 작품들은 현대인의 외로움과 낯선 감정을 포착한다.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로얄은 욕실용품 전문기업 로얄&컴퍼니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2007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문을 연 갤러리 로얄은 복합문화공간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입소문을 타고 다양한 연령대가 즐기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건물을 설계한 민현식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도 “활용도 높은 공간”이라며 자주 애용한다.
지하 1층은 회사의 욕실제품을 전시하는 ‘목간(沐間)’으로 다양한 욕실공간과 욕실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마련했다. 1층은 북카페와 레스토랑의 공간이다. 빈티지한 느낌의 원목 테이블이 감각적인 동시에 편안한 느낌을 준다.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인테리어 관련 서적도 만나볼 수 있다. 2층에서는 갤러리와 와인바를 즐길 수 있는데, 갤러리는 특히 실력 있는 예술가를 발굴하는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운영된다. 전문 큐레이터가 상주하기 때문에 작품 설명도 들을 수 있다.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크링(kring·원)’도 금호건설이 순수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감각적인 공간이다. ‘환상통’이라는 주제로 마련된 신진 작가들의 설치 작품이 현재 1층 아트리움에서 전시되고 있다. 전시뿐만 아니라 순백의 타일로 꾸민 모던한 인테리어도 그 자체로 감상거리다. 64석 규모의 영화관도 마련돼 있는데 비상업 영화가 연중 상영돼 예술영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준다. 2층의 탁 트인 카페에서는 느긋하게 신선한 드립커피를 즐길 수 있다. 커피 값은 정해져 있지 않다. 내고 싶은 만큼 내면 된다. 염두에 둘 점은 이렇게 모아진 커피요금 전액이 사회복지단체에 기부된다는 것.
강북에서는 KT&G의 ‘상상마당’이 손꼽힌다.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거리에 자리한 상상마당은 ‘비주류 인디문화를 지원한다’는 슬로건에 걸맞게 젊은 감성이 가득 충전돼 있다. 특히 지하 2층에 마련된 라이브홀은 홍익대 앞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들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밴드 음악 지원 프로그램인 ‘밴드 인큐베이팅’을 통해 선발된 밴드의 공연이 주말마다 열린다. 1∼3층은 신예 작가와 비주류 미술을 지원하기 위한 전시 공간이다. 1층 아트마켓은 신인 디자이너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 용품을 판매하고, 2층 갤러리에서는 미술 전시가 열린다. 3층 아트마켓에서는 전시와 작품 판매가 함께 이뤄진다. 5층은 암실과 스튜디오로 꾸며져 있는데 아마추어 사진가를 위한 열린 공간이다.
○ 트렌디한 복합문화공간 확대 한곳에서 휴식과 문화생활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각광을 받으면서 서울 시내 트렌디한 거리를 중심으로 소규모 복합문화공간도 속속 늘고 있다.
가구업체 까사미아는 최근 서울 속 작은 프랑스라는 서초구 반포동의 서래마을에 4층 규모의 매장을 열었는데, 예쁜 빵집과 노천카페 분위기를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산다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것. 1층에는 카페를 마련해 고급스러운 케이크와 쿠키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일반 제과점에서 맛보기 힘든 프랑스풍 제과가 매일 200여 종씩 선보인다. 또 카페 공간에는 가든용품, 액자와 그릇 등이 진열돼 있어 진한 커피 향과 함께 어우러지는 감각적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들어선 ‘엘본’은 문화공간을 추구하는 멀티숍이다. 쇼핑과 문화공간을 접목한 최신 트렌드를 반영했다. 해외 신진 디자이너의 핸드백, 슈즈 등을 구매할 수 있는 매장이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 마련됐다. 이곳만의 특징이라면 쇼핑 공간 곳곳에 휴식처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2개 층의 공간을 잇는 대형 서가와 편안한 소파가 인상적이고, 한쪽에 마련된 갤러리도 아담하지만 감각적이다. 여기에 2, 3층에는 캐주얼한 느낌의 바와 레스토랑이 자리해 감성적 문화 교감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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