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섬 제주의 공간 구성… 바람의 흐름 거스르면 곤란”

  • 동아일보

‘제주영어도시’ 총괄설계 맡은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 씨

“40년전 처음 찾은 아버지의 땅서
조선 민화처럼 은근한 정서 느껴”

지난해 3월 완공된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하늘의 교회’는 호수를 닮은 건축물이다. 여러 각도로 접은 아연합금 조각을 촘촘히 이어 붙인 길쭉한 박공지붕이 시시때때로 물결치듯 하늘빛을 반사한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난 이 건물의 설계자 이타미 준(伊丹潤·73) 씨는 “구름과 함께 끊임없이 흐르는 섬의 하늘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타미 씨는 재일동포 2세 건축가다. 도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지만 국적은 한국이다. 한국 이름은 유동룡(庾東龍). 그는 “학교를 마치고 설계사무소를 관청에 등록하기 위해 일본어 펜네임을 만들었다”며 “한국을 오갈 때 이용했던 공항에서 성을 따고 대중음악 작곡을 했던 친구 길옥윤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빌렸다”고 했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제주영어교육도시’ 총괄설계를 위해서다. 이타미 씨는 하늘의 교회, ‘물 바람 돌 땅 미술관’ 등을 최근 제주도에서 잇달아 선보였다.

“이미 지반 다지기 작업에 착수한 영어도시 프로젝트에 일단 ‘기본 콘셉트부터 다시 함께 고민해 보자’고 제안한 상태입니다. 바람의 땅인 제주도에 바람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 공간을 만들어 앉힐 수는 없지요. 저를 여기까지 부른 것은 이 땅의 기운을 거슬러 망가뜨리지 않을 진심을 알아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일교포 2세 건축가 이타미 준 씨는 “도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지만 내 건축의 밑바탕이 된 사상은 한국의 민화와 자연에서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재일교포 2세 건축가 이타미 준 씨는 “도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지만 내 건축의 밑바탕이 된 사상은 한국의 민화와 자연에서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하늘의 교회는 아버지가 태어난 나라를 대하는 그의 조심스러운 진심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철골로 세운 뼈대를 꼼꼼히 나무로 감싸고 건물 전체를 빙 둘러 정갈한 사각 호수를 만들었다. 1960년대 말 처음 한국에 와서 만났던 조선시대 민화처럼, 원래 거기 있던 것을 찾아내 은근히 추출한 듯한 이미지다.

최근 제주도에서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지만 이타미 씨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주무대는 사무소가 있는 일본이었다. ‘먹의 집’ ‘색채의 교회’ ‘엠 빌딩’ 등 자연 재료의 맵시를 강조한 건축물이 해외에서 주목을 받아 2003년 프랑스 파리 국립 기메미술관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2005년에는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장을 받기도 했다.

“일본에서 한국인으로서 건축을 하는 설움이야 새삼 이야기할 것도 없지요.(웃음) 미술을 공부하려다가 아버지께 죽도록 혼나고 공대에 간 뒤로 제 마음이 예술과 건축 사이를 맴도는 것처럼, 이타미 준 또는 유동룡의 영혼은 한국과 일본 사이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 건축가로서 받은 상은 그래서 더 영광스러웠죠.”

2002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주택, 2006년 김수근문화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제주도 미술관 프로젝트는 그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자연의 일부가 되는 건축’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는 자서전 ‘돌과 바람의 소리’에 “건축은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연에 바치는 또 다른 자연”이라고 썼다.

“건축가는 예순 살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엔 어느 때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 일을 손에서 한시도 놓고 싶지가 않아요. 20대부터 조금씩 혼자 쌓은 건축여행에서 얻은 깨침이 이제야 하나둘씩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 같아요. 건축이 그래서 참… 고단한 업(業)인 거겠죠.”(웃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