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비료나 살충제가 없고 농사를 도와주는 기계도 전혀 없던 중세에는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 농사를 어떻게 했을까. 타임머신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수백 년 전 모습을 그대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얼추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바로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을 살펴보는 것이다.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은 단순히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포도 재배 전 과정을
태양과 달, 지구와 별의 운행 주기에 맞추고 이 과정에서 인위적이고 화학적인 모든 것을 배제하는 농법이다. 최첨단 기계가
시시각각 등장하는 21세기 와이너리에서 기계 대신 말이나 소를 이용해 와인을 생산한다면 상상이 될까.》
○국순당L&B, 바이오다이내믹 와인 수입
한국에서도 이처럼 유럽 중세 시대의 포도 재배 방법을 통해 만든 최고급 와인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종합주류 전문회사인 국순당L&B에서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을 수입하기로 한 것. 국순당L&B는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서 생산되는 바이오다이내믹 와인 셴블뢰(한국 상표명 ‘쉔블루’) 3종을 독점 수입해 지난해 12월 20일부터 롯데백화점 본점과 영등포점에서 선보이고 있다. 병당 가격은 50만 원 선.
런던증권거래소 최고경영자(CEO)의 아내인 니콜 로레트 씨가 셴블뢰를 생산하는 농장의 소유주이자 양조자이다. 로레트 씨는 프로방스 지역에서 수십 년간 버려졌던 황폐한 포도밭을 10년간 되살리는 노력 끝에 셴블뢰를 만들었다. 셴블뢰가 독일에서 열린 와인 엑스포에 나온 것을 국순당 배중호 대표가 직접 맛을 보고 독점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셴블뢰를 홍보하기 위해 서울에 온 로레트 사장은 “셴블뢰는 명품 와인을 생산하는 프랑스 론 지역 가운데서도 최고의 와인이며 최상의 품질을 보증하면서 스토리가 있는 와인”이라고 강조했다.
로레트 씨는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은 중세 시대 농법을 그대로 따라 만든 와인이기 때문에 생산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며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로레트 씨가 운영하는 농장은 해발 550m 고도의 몽방투 골짜기에 위치에 있으며 이 지역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보호지역이어서 각종 공해와 기타 환경적인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로레트 씨의 포도 농장 내에서는 심지어 자동차도 운행할 수 없다. 자동차가 배출하는 배기가스가 포도 생육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술적인 요소까지 가미된 농법
로레트 씨는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에는 약간의 주술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달의 공전과 지구의 자전 주기에 따라 최소한의 침전물(버려지는 포도)이 발생하도록 포도 수확 날짜를 정하는 것이다. 또 수성과 목성의 주기가 포도 맛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믿기 때문에 이들 행성이 지구와 가까울 때 포도를 재배하기도 한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쇠뿔에 소의 내장을 담아 포도 농장 구석구석에 묻어 두는 것도 주술적인 요소가 포함돼 있다. 소의 내장이 썩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비료 역할을 하게 되는데, 굳이 쇠뿔을 이용하는 것은 뾰족한 쇠뿔이 땅에 박히는 순간 지력을 더욱 강하게 할 수 있다는 주술적인 믿음이 중세로부터 이어져 오기 때문이다. 로레트 씨는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은 한국에서 음력을 농사에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달의 운행에 따라 벼농사를 지었던 한국과 마찬가지로 포도를 재배할 때 달의 운행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을 만들어 낸 정신학자이자 과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도 “인간이 계산하거나 측정해서 알 수 있는 과학적인 개념보다 더 상위의 개념이 존재할 수 있다”며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의 힘이 아닌 자연의 힘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이때 자연을 경외하는 주술적인 요소가 나타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스토리가 있는 와인
로레트 씨는 “셴블뢰 한 병 한 병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중세 유럽 최고의 러브 스캔들인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이야기를 그대로 따와 와인 이름을 붙인 것. 셴블뢰의 라벨에 그려진 그림도 모두 이 같은 스토리를 담고 있다. 특히 ‘수도사 아벨라르와 수녀 엘로이즈의 사랑’은 12세기 유럽을 뜨겁게 달궜다. 당대의 유명한 신학자였던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가정교사를 맡았다가 사랑에 빠져 아들을 낳았지만 성직자였던 아벨라르의 명성에 흠집이 가는 것을 두려워해 대외적으로 이를 부인했다. 엘로이즈는 수녀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자의 집안에서 가문을 모욕한 것으로 간주하고 아벨라르를 습격해 거세한다. 둘의 애달픈 사랑은 이때 오간 편지의 내용을 통해 후대에 알려지게 된다.
로레트 씨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이 와인으로 환생했다”며 “중세 유럽의 농업 방식을 그대로 따온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중세의 러브 스토리”라고 강조했다.
○로제, 아벨라르, 엘로이즈 수입
국순당L&B가 한국에 들여온 셴블뢰는 3종이다. ‘로제’는 처음엔 감미로우면서도 뒷맛은 상큼한 것이 매력이다. 로레트 씨는 “이 와인이 매콤한 한국음식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조언했다. 나머지 2종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다. 남성을 상징하는 아벨라르는 포도 품종인 그르나슈(80%)와 시라(20%)로 빚어지는데 농도 높은 진한 느낌이 장점이다. 여성을 상징하는 엘로이즈는 시라(65%), 그르나슈(30%)와 청포도 품종인 비오니에(5%)를 블렌딩했다. 로레트 씨는 “엘로이즈는 군더더기 없는 맛이 장점이어서 수녀 엘로이즈의 일편단심을 연상케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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