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제53회 국수전… 두터움의 위력

  • 동아일보

○ 안형준 2단 ● 유창혁 9단
본선 5국 5보(75∼89) 덤 6집 반 각 3시간

흑 75로 끊는 것은 당연한 수. 이곳의 흑 세력을 집으로 만들겠다고 76의 곳처럼 뒤로 물러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세력은 집짓기가 아니라 공격에 사용해야 한다.

백 78은 안형준 2단이 백 ○로 젖힐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타개책. 흑이 무심코 참고도 흑 1로 젖히면 백에게 걸려든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백 2가 이 상황에선 흑을 가장 괴롭히는 수. 흑 5로 이으면 백 6으로 흑 다섯 점이 잡혀 졸지에 역전 당한다.

따라서 흑 85까진 필연의 수순이고 백 86으로 지켜 어느 정도 모양을 갖췄다.

백이 별 손해 없이 흑 세력을 헤집으며 살길을 찾았으니 대성공을 거둔 게 아닐까.

그러나 형세는 미동하지 않는다. 백이 우상에서 자리를 잡는 동안 흑의 두터움이 계속 배가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흑 87의 한 칸 뜀은 밋밋해 보이지만 두터움의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의 젖힘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백 88의 보강이 불가피하다.

유창혁 9단은 지금까지 쌓아놓은 두터움을 이용해 흑 89로 좌변 백 진에 뛰어든다. 우상 흑 세력이 무너진 것을 여기서 보상받는 것이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두터움의 위력이 무섭다. 백은 고민이다. 흑 89를 잡을 수는 없고, 그냥 살려주자니 패배가 눈앞에 보인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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