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테마 에세이]커피<3>장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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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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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 떨떠름한 녀석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장장식 커피는 맛이 아니라 느낌으로 마시는 것 같다. 커피에 대해 지적 탐구가 많지 않은 나는, 그래서인지 커피를 대할 때마다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커피와의 첫 인연은 동아일보사를 통해서였다. 아마도 1975년 2월, 고등학생 때로 기억한다.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가 났을 때 친지의 심부름으로 동아일보사를 찾아가 봉투를 내고 나오다 동네 대학생 형을 만났다. ‘고삐리가 어마어마한 일을 한 것’으로 착각한 형은 나를 다방이라는 데로 데리고 가 ‘이상한 음료’를 사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커피였다. 물론 내가 왜 동아일보사에 들렀는지 묻지 않은 채 “그래, 너 같은 고교생이 있어서 좋구나, 좋아”를 연발하며, 커피를 들이댔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인데, 그래서일까 처음 마셔본 커피는 정말 썼다. 설탕을 넣었다지만 한약 같다고나 할까. 지금도 커피를 마실 때면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의도하지 않은 거짓과 암묵적 동의 속에 이루어진 거짓말이 내게 커피의 첫 느낌이 된 셈이다.

대학생이 되어 너나없이 아르바이트를 할 때다. 가정교사라는 말이 더 어울렸던 시절, 부유한 집에서 학부모와 첫 상면할 때 커피가 나왔다. 아이의 어머니가 손수 타면서 “설탕을 넣느냐”고 물었는데, “커피는 블랙이 제격”이라는 어느 선배의 말이 떠올라 마치 커피에 대해 잘 아는 듯이 블랙을 요청했고 결과는 참담했다. 빈속에 호기롭게 들이켠 진한 커피 한 잔이 쓰린 속을 뒤집어 놓았다. 겉멋이 남긴 뒤끝이다.

세 번째 기억은 좀 더 지난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전공이 민속학인지라 농어촌을 다니며 민속조사를 하던 때다. 인심이 넉넉한 촌부는 조사자를 반갑게 맞으며, 커피를 내왔다. 당시 시골에서 커피라는 것은 ‘현대식 문화생활’의 상징이었다. 문제는 냉면사발만 한 그릇에 커피와 설탕을 듬뿍 넣어 내놓는 그들 나름의 제조방식이었다. 물론 크림은 넣지 않은 채. 최상 접대의 의미로 내온 것이니 당연히 감사의 표정으로, 그래서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억지로라도 다 마셔내야 했다. 그때의 커피는 정말 머리가 어질할 정도로 단맛이었고, 무조건 마셔야 하는 체면치레용이었다.

그래서 커피는 나에게 주변의 분위기에 무척 민감한 대상으로 남아 있다. 거짓말, 겉멋, 그리고 체면치레라는 이름으로. 이제 커피에 익숙해질 만한 낫살이지만, 그때의 느낌은 내 곁에 여전히 살아있다. 음흉한 녀석으로….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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