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서봉수 “362번째야”

  • 입력 2009년 8월 20일 03시 03분


28일 SKY바둑배 대국
시니어 연승전 최종국
“당신에게만은 질수없어”

정계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평생의 라이벌이었다면 바둑계에선 1953년생 동갑내기인 조훈현 서봉수 9단이 그렇다. 1980년대 두 대국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도전기나 결승전에서 만나 ‘조-서 시대’를 열었다. 국수전에도 1980∼88년 9차례나 잇달아 도전기에서 대결을 펼쳐 타이틀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쌓인 대국수가 361국. 이 중 조 9단은 243승 118패(승률 67.3%)를 기록했다. 프로 기사 중 어떤 라이벌도 이렇게 많은 대국을 벌인 경우는 없다. 조 9단은 이창호 9단과는 307국을 뒀다.

조 9단과 서 9단은 지난해 3월 전자랜드배 왕중왕전 예선에서 만난 후 1년 5개월 만에 다시 맞대결을 펼친다. 28일 서울 마포구 스카이바둑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SKY바둑배 시니어연승전 최종국이다.

이 대회는 조 9단을 주장으로 한 국수(國手) 팀과 서 9단이 주장을 맡은 명인(名人) 팀으로 나눠 8명씩 연승전 방식으로 대결을 펼쳤다. 조 9단은 국수전에서 10연패 등 16번 우승했으며 서 9단은 명인전에서 5연패를 포함해 7번 우승했다.

명인팀이 서능욱 9단의 6연승에 힘입어 우승을 코앞에 두는 듯했으나 마지막 주자인 조 9단이 14일 양재호 9단을 물리치며 5연승으로 반격해 명인팀 주장인 서 9단과 맞붙게 됐다. 5000만 원의 상금이 걸린 팀 우승의 향방이 ‘조-서 대결’에 달린 것이다.

역대 전적에선 3판 중 2판꼴로 조 9단이 이긴 셈이지만 최근 승패는 점치기 쉽지 않다. 두 기사는 국내 도전기 일선에서 물러난 2000년 이후 상대와의 싸움에서 연승과 연패를 거듭했다. 서 9단은 2001년까지 4연승을 달리더니 조 9단이 5연승(2002∼2005년)했고 2006년 이후엔 서 9단이 2연승을 거둬 6승 5패로 앞서고 있다.

서 9단은 “조 9단을 만나면 80년대보다 신경이 더 예민해지고, 이기겠다는 마음이 더 든다”며 “과거에는 많이 졌지만 이제는 5 대 5의 승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기사는 정상권에선 물러난 뒤 신예에게도 자주 패하긴 하지만 ‘적어도 당신에게만은 질 수 없다’는 라이벌의 오기가 작용해 치열한 대결이 펼쳐진다.

지난해 3월 361번째 대국에선 조 9단과 서 9단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바둑이 끝난 뒤에도 복기 없이 헤어졌다. 두 기사가 20대 초반이던 1970년대 후반, 서로 도전기에서 만나면 식사도 따로 하고 복기도 안 해 관전기 필자의 애를 태웠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하다고 주위에서는 말한다.

두 기사는 최근 농심배 예선에서도 유사한 활약을 펼쳤다. 조 9단은 박정상 9단과 김동희 2단을 꺾고 예선 준결승에 올라 김승재 3단과의 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서 9단도 고근태 7단에 이어 목진석 9단을 물리치며 예선 준결승에 올랐으나 19일 대국에서 홍민표 7단에게 졌다. 조 9단은 7월 이후 농심배와 SKY배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11승 3패를 기록하고 있다. 서 9단도 올해 4승 6패로 부진하다가 조 9단이 성적을 낸 7월 이후 8승 2패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김승준 9단은 “두 기사가 오랜 세월 라이벌로 지내다 보니 승부 리듬도 비슷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바둑계에서 전무후무한 라이벌”이라고 말했다.

SKY배 최종전은 위성TV 채널인 SKY바둑을 비롯해 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 포털사이트 파란, 야후에서 생중계한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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