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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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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인파가 휴양지로 몰리는 8월 초는 작가들에게 바쁜 시기다.
각종 문학 계간지들의 가을호 마감 시즌이기 때문이다.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하며 집필에 몰두하는 작가들의 신경이 한창 예민해진다. 하지만 이 작가의 마감 풍경은 좀 다르다.
그는 놀이공원에 가서 자이로드롭과 아틀란티스를 타거나 스케이트를 타며 위안을 받는다.
때론 캐리비안베이에 가고 때론 벨리댄스나 살사를 추러 간다.
아니면 충동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머리 스타일을 바꿔버린다.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만난 소설가 윤고은 씨(29)는 낙천적이고 명랑했다. 얼마 전에도 마감 때문에 놀이공원에 다녀왔다는 그는 “마감 때 머리를 계속 쓰다 보면 몸은 어딘가로 붕 뜨고 싶어서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본다”고 말했다.》
“공원서 ‘마감 스트레스’ 풀고 도서관-집-커피숍에서 집필 평온한 사람들의 등 떠밀어 일상에 파장 일으키고 싶어”
여전히 소설 한 편을 마감 중인 상태였지만 “다음에는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상당히 여유 있어 보였다.
2004년 동국대 문예창작과 재학 중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윤 씨는 지난해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을 발표하기까지 소설가로서는 대학 졸업 후 4년의 공백기간을 가졌다.
그동안 이른바 프리터(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것)족으로 살았다. 사보기자, 과외, 어린이 책 집필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이 모이면 여행을 다녔다.
작품활동을 하는 것도,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그 시절을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글 쓰는 것 외에도 재밌는 일이 많았고 속박당하는 곳도 없으니 즐거웠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쉬움, 허전함이 느껴졌어요. 007요원이 잠깐 일을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결핍감에 같은 학교 출신의 선후배들과 함께 ‘해토머리’란 소설 창작 모임을 가진 지 1년여.
달이 증식, 복제되는 사건이 몰고 온 지구의 한바탕 소동을 다룬 장편 ‘무중력증후군’으로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전업작가로 정착하게 됐다. 하지만 어디든 한 군데 오래 있지 못하는 성격은 여전해서 글을 쓰기 위해 도서관, 집, 커피숍 등을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집필방식은 커피숍에서 서너 시간 작업을 한 뒤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떠는 거라고 한다. 베이킹, 댄스 등 취미생활도 다양한데 언제나 초급반에 머물러 있다. 어느 정도 그 세계에 대해 파악하고 나면 곧 다른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인생 자체가 충동적인 것 같다”는 그가 완결된 이야기를 써내는 힘은 메모수첩에 있다. 그에겐 곳곳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떠오른 생각들은 꼭 출처를 밝히면서 메모를 해두는 습관이 있다. “집에 불이 나면 이 수첩들을 가장 먼저 챙겨서 나갈 것 같다”고 한다.
이런 그가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전염병’이란 이미지다. 그는 “뭔가 발생해서 일상이 흐트러지게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며 “전염병이란 건 병균, 사건, 중독적인 무엇인가일 수도 있고 뉴스일 수도 있는데 그 이후에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게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래선지 작가로서의 지향점도 독특했다. 자신이 가진 바이러스를 독자들에게도 옮겨버리고 싶다는 것이다. 문학을 통해 소동을 꿈꾸는 악동답게 그는 “작품 속에서 썼던 허구가 실제에서도 통용될 때의 희열이 크다”며 “평온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등을 떠밀고, 안정적인 일상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싶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현대사회에서는 바이러스의 생산, 유통자나 의사의 역할이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 제가 만들어낸 이런 바이러스들을 접하면서 현상에 대한 ‘진단’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치유와 회복요? 그건 그 후에 각자 알아서 하셔야죠.(웃음)”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