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0돌 서울 중앙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출간

  • 입력 2009년 6월 12일 03시 03분


채문식 전 의장 - 仁村선생, 금지된 조선말 맘대로 쓰게 해

정진석 추기경 - 학풍 자유로워 신부-목사-승려 많이 배출

정몽준 의원 - 유도부와 결투뒤 보복 두려워 학교 못가

지난해 개교 100주년을 지낸 중앙고의 교우회가 졸업생과 교사들의 회고담을 엮은 ‘중앙학교 10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계동 일번지’를 최근 펴냈다.

역대 교지와 교우회지에 수록됐던 글을 발췌한 것으로 일석 이희승 선생, 정진석 추기경, 채문식 전 국회의장 등 100여 명의 글을 실었다. 9회 졸업생인 일석은 1919년 3·1운동 즈음의 학교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왜경의 감시가 심해 형사들이 매일 학교를 지키고 있었으나 학생 중에 비밀(독립만세운동 계획)을 누설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3월 1일 오전까지 수업을 종전대로 해 형사들도 감쪽같이 속아 정오에 재학생들이 탑동 공원에 집합하는 것을 몰랐다”고 썼다.

33회 졸업생인 이기을 연세대 명예교수는 “일제는 온갖 압박을 가했지만 중앙학교는 스승과 제자가 혼연일체 되어 일제에 반항했다. 조회시간에 부르게 되어 있는 일본 국가를 제창하다가 태연히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앙학교는 ‘조선 사람’이라는 자각을 처음으로 내 마음속에 심어 주었다”고 회고했다.

채문식 전 국회의장(34회)은 중앙학교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에 대한 기억을 전했다. 그는 “다른 학교에선 조선어를 쓰면 야단맞던 시절에 중앙학교에서는 어디서도 조선말로 통했는데 이는 인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면서 “사람들은 인촌더러 ‘총을 들고 항일운동을 했느냐’고 하지만 그때 그 시절 인촌만큼 이 땅에서 독립정신을 일깨워 준 사람도 드물었다”고 말했다.

7회 졸업생으로 초대 내무부장관을 지낸 동산 윤치영 선생은 인촌에 대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애국적 운동에 그의 마음과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그는 정치 이전에 침묵의 현실적 애국자였었고 애국자에 앞서 인간애의 소유자였다”고 전했다.

41회 졸업생인 정진석 추기경은 “중앙학교는 종교에 대해선 아무런 차별이 없는 자유로운 학풍이어서 가톨릭 신부, 목사, 승려를 많이 배출했다”고 소개했다. 학창시절 권투를 배운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61회)은 유도부 주장과 삼청동 숲속에서 싸운 일화를 들려줬다. “6개월 정도 권투를 배웠을 때 유도부 주장이 싸움을 걸어와 결투를 벌였는데 정신없이 치고받는 싸움이 끝나고 보니까 상대방이 완전히 뻗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사건’ 이후 유도부 주장의 친구들이 복수를 노린다는 소문을 듣고 일주일 정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배우 최불암 씨(49회)는 대학시절인 1961년 인촌 일대기를 다룬 연극에서 인촌 역할을 맡았다. 그는 중앙중 3학년 때인 1955년 인촌의 장례식 날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려다 규율부 선배에게 붙잡혀 맞은 기억을 떠올리며 “장례식 때 뺑소니를 치려던 내가 인촌 역을 맡은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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