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안타깝다]진화론이 자극한 문학적 상상력

  • 입력 2009년 2월 28일 03시 03분


◇다윈의 플롯/질리언 비어/휴머니스트

2004년경이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공부하는 한 친구를 만났다가 뜬금없는 소리를 들었다. “형, 정말 재미있는 책이 있는데 꼭 형이 번역해줬으면 좋겠어요.” ‘다윈의 플롯(Darwin's Plots)’이었다. 미심쩍어하는 내 눈초리를 보더니 그는 다시금 내 지적 감성을 자극했다. “친구들하고 강독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 정말 감탄하면서 읽고 있어요.” 나는 어떤 책이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는 지적인 성향을 가진 독자나 19세기 문학, 찰스 다윈, 고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으면서 행복감을 느낄 거라고 했다. 깊이 읽으면 한없이 심도 있는 책이지만, 평범한 교양인들도 나름의 수준에서 이해하면서 즐겁게 읽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과 19세기 문학의 관계를 다룬다. 문학비평가이자 영국 케임브리지대 학장을 지낸 저자는 조지 엘리엇과 토머스 하디 등 19세기 영국 작가들이 진화론에 강한 영향을 받아 그들의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진화론을 반영하고 있음을 분석한다.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유럽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의 평화로운 시기를 일컫는 말)’ 소설 어디에나 다윈의 진화론이 스며 있다고 말한다.

‘지적으로 유익하면서도 두꺼운 책’의 기획과 편집을 다양하게 체험한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4000∼5000명의 독자가 이 책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초판 2000부는 10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도 소진되지 않고 재고가 남아 있다. 시점을 고려하지 않은 게 이런 결과의 한 원인이었던 듯하다. 2008년 5월에 낼 게 아니라, 다윈 탄생 200주년인 올해나 아니면 다윈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지난해 말이었다면 상황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다윈 독자층이 많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이대로 묻히기엔 마음이 아픈 책이다. 다행히 올해 들어 다윈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다윈의 생애와 사상을 다루는 행사를 계기로 마케팅을 하면 좀 더 많은 이가 이 책의 진가를 알게 되지 않을까.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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