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4년 대입 ‘백지원서’ 등장

  • 입력 2009년 1월 6일 03시 00분


“선생님, 여긴 빈칸으로 남겨주세요.”

1984년 1월 초 대입학력고사 성적이 발표된 후 일선 고교에선 큰 혼란이 빚어졌다. 진학지도를 하는 고3 담임교사들과 학부모, 학생들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대학 입학지원서의 지원학교와 학과 칸을 비워놓은 채 학교장 도장만 찍어 달라고 학부모들은 요구했다. 막판까지 경쟁률을 체크한 후 현장에서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겠다는 것이었다.

그해 학력고사 난이도는 전년보다 높아 수험생들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여기다 대학의 모집단위도 이전보다 세분돼 전공 선택의 어려움도 컸다. 1985년 대입에선 수험과목이 2개나 더 늘어나도록 돼 있어서 재수 기피 현상도 뚜렷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선 ‘무조건 올해 대학 문을 뚫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1984년 대입 눈치작전의 특징은 이른바 ‘백지원서(白紙願書)’의 등장으로 요약된다. 학력고사 성적(90%)과 내신 성적(10%)의 합산 치로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합격을 좌우하는 또 다른 변수는 ‘경쟁률’이었다. 당시엔 대학별 본고사 없이 학력고사 성적에 따라 전국 서열이 매겨졌다. 그땐 휴대전화가 등장하기 전이었다.

원서를 손에 쥔 학생과 학부모들은 ‘어느 과가 미달이다’라는 정보전을 치러야 했다. 특히 중상위권 대학의 경우 수험생들이 마지막에 어디에 몰리느냐에 따라 커트라인이 심하게 출렁거렸다.

대학들은 그해 입시부터 우편 접수의 경우 마감시간 이전에 도착한 것에 한해 유효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 전까진 원서 접수 마감일 소인이 찍히면 받아줬지만 마감일에 원서가 집중적으로 몰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방침을 바꿨다.

당장 지방 소재 고교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서울 학생들은 그날 상황을 보고 대학과 학과를 결정할 수 있지만 지리적으로 먼 지방은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백지원서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백지원서를 써주지 않을 경우엔 원서를 2장 써서 학교장 직인을 찍어 달라는 학생도 있었다. 원서 접수 마감일 눈치작전이 극심해지면서 경쟁률이 낮은 창구를 찾아 학과를 즉석에서 적어 넣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이해엔 배짱지원과 눈치작전을 한 학생들이 합격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서울대는 상위권 학생들이 하향 지원을 해 법대와 경영대의 정원 미달 사태가 빚어졌다. 나머지 학과의 커트라인이 예상보다 올라가는 바람에 점수에 맞춰 소신 지원을 한 학생들이 낙방하기도 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