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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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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팽송은 어리둥절하다. 사실은 이 이름을 쓰는 것도 어색하다. 천사의 신분으로, 순수한 정신으로 살아가던 나날. 다시 인간 시절 육신의 형태로 돌아온 건 알겠는데. 금빛 고운 모래가 깔린 해변, 안갯속 저 멀리 산봉우리가 보이는 이곳은 어딘가.
어디선가 나타난 나비소녀와 반인반수의 켄타우로스. 그들에게 이끌려 만난 노인은 자신을 술의 신 ‘디오니소스’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이곳은 올림피아, 신들의 왕국이란다. 분명 천사보다 우월한 실체가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그렇다면 팽송은 신의 대열에 합류한 걸까. 이때 디오니소스의 한마디.
“물론 이제부터 배워야지. 자네는 아직 신 ‘후보생’일 뿐이야.”
1994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개미’부터 지난해 ‘파피용’까지 내는 작품마다 화제를 모았던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씨(사진)가 돌아왔다. 집필에 9년이 걸린 방대한 소설 ‘신’ 가운데 1부 ‘우리는 신’(전 2권)이 20일 먼저 발행됐다. 2부 ‘신들의 숨결’과 3부 ‘신들의 미스터리’는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프랑스에선 2004년부터 출간된 이 소설은 현지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1부가 35만 부가량, 2부와 3부도 각각 26만여 부씩 팔렸다. 작가의 대표작 ‘개미’(15만 부)와 ‘파피용’(24만 부)의 판매량을 뛰어넘는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이 소설이 ‘개미’ ‘나무’ ‘뇌’ 등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영광의 순간을 재현할지 관심이 높다.
작가가 펼쳐 놓은 상상력의 우주는 넓고 복잡하다. 현세 위에 영계와 천사계가 있고, 그 위에 신이 있다. 하지만 팽송이 도착한 신의 세계는 독자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디오니소스에서 짐작되듯, 아프로디테와 포세이돈, 헤르메스 등이 등장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기본 설정이다. 여기에 기독교와 유대교 카빌라 신앙, 이집트 신화, 티베트 불교 등등이 버무려져 ‘베르베르 표’ 신화가 완성된다.
교육이 진행되며 점차 탈락자가 늘어가는 신 후보생들. 시험에 통과한 이들은 인간의 터전 지구와 닮은 ‘지구 18호’를 이용한 수업에서 조금씩 천지창조의 비밀을 배워 간다. 하지만 팽송과 친구들은 훈련 이면에 왠지 모를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느끼고…. 밤이면 몰래 신들이 금지한 영역을 탐사하며 새로운 모험에 나선다.
뭣보다 소설 ‘신’은 초기작 개미가 주던 ‘읽는 재미’가 가득하다. 신화와 과학을 넘나드는 작가 특유의 현란함이 몇몇 전작에서 보이던 산만함을 쏙 빼고 다시 생기를 찾았다. 팽송의 경험과 그들이 만든 지구 18호 속 인간 세계, 그리고 주인공이 천사 시절 돌보았던 3명의 환생 등 세 이야기가 함께 진행됨에도 쫀쫀하게 버무려진다. 그중 하나가 일제강점기 군위안부를 겪은 외할머니를 둔 재일교포 ‘은비’로 환생한 건 유독 한국에서 인기 높은 작가의 ‘살갑거나 혹은 낯간지러운’ 배려로 보인다. 원제 ‘Nous Les Dieux’.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인간의식 초월 고차원적 원리 맛보세요”▼
저자 베르베르, 본보에 e메일
그는 “소설 ‘신’은 세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샤머니즘과 천지 창조 설화를 두루두루 참조한 뒤 상상력의 흐름을 편안히 따라가며 썼다”며 “이는 전작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에 이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에는 두 작품의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또다시 등장한다. ‘타나토노트’에서 팽송은 친구이자 공동연구자인 라울 라조르박과 함께 ‘영계 탐사 실험’, 즉 죽음 이후의 삶을 탐사한다. 사후세계의 비밀을 밝혀낸 팽송이 천사가 돼 지도천사 에드몽 웰즈의 도움을 받아 세 명의 인간을 수호하는 이야기가 ‘천사들의 제국’이다. 영계, 천사세계에 이어 신들의 세계로 뛰어든 팽송 옆에는 두 책의 주요 인물, 라조르박과 웰즈도 함께한다.
베르베르 씨는 “결국 팽송의 깨달음을 향한 여행은 우주의 창조자를 대면하는 순간에 이른다”면서 “신작을 통해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 고차원적 원리를 맛보며 독자들도 ‘만약 내가 신이라면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소설 ‘신’은 전작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베르베르 씨가 ‘고차원적 원리’를 전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은 책 속의 책으로 등장하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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