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com]세계적 플로리스트 제프 리섬

  • 입력 2008년 8월 29일 02시 55분


내 꽃디자인 비결은 직관 따라 하기

프랑스 파리의 포시즌 조지Ⅴ호텔은 각종 평가기관으로부터 세계 최고의 호텔로 꼽힌다.

1928년 파리의 심장부인 샹젤리제 거리에 세워진 이 호텔의 숙박비는 하룻밤에 735∼9000유로(약 116만∼1422만 원). 2000년 리노베이션을 통해 ‘럭셔리의 총체’로 재탄생했다.

이 호텔 구석구석을 돋보이게 만드는 ‘미다스의 손’이 최근 신라호텔의 초청으로 한국에 다녀갔다. 제프 리섬(38) 파리 포시즌 조지Ⅴ호텔 수석 플로리스트다.

박물관과 흡사한 웅장한 로비, 에펠탑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야외 테라스, 레스토랑 평가지 미슐랭 가이드가 최고 등급을 부여한 레스토랑 ‘르 생크’…. 이들 공간은 그가 만드는 꽃 장식으로 최고급 호텔의 명성에 걸맞게 매일 단장된다.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유럽 최고 호텔 플로리스트에 3년 연속 뽑혀

최근 3년간 유럽화훼협회가 선정한 최고의 유럽 호텔 플로리스트로 뽑힌 그의 작품들은 꽃을 예술적 매체로 승화시키기 때문에 늘 드라마틱하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는 “모든 꽃이 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붉은 장미나 카라꽃을 유리 화병 위에 가로로 얹어두는 장식을 할 때가 많다. 줄기를 물에 담그지 않기 때문에 꽃은 4∼5시간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짧은 만큼 아름다움이 더하는 걸까.

그는 꽃을 유리 화병 속에 ‘잠수’시키기도 한다.

주황색 카라의 줄기를 구부려 물속에 거꾸로 넣거나 초록색 난초, 노란색 튤립의 꽃잎을 유리 화병 속에 가득 담는 식이다.

또 꽃병과 양초 등을 적극 활용한다.

꽃을 원통 모양 유리 화병에 45도로 기울여 꽂는 것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스타일. 높이가 1m 쯤 되는 화병 수십 개를 일렬로 배치함으로써 거대한 스케일이 완성된다.

그는 꽃을 장식할 때 가장 먼저 공간의 특징을 파악한다.

“일단 꽃을 둘 장소의 색상과 규모를 둘러보세요. 그리고는 꽃병을 선택하는 거예요. 다음으로 자연 빛, 인공조명, 양초 중 한 가지 조명효과를 결정합니다. 이 모든 조건에 어울릴 꽃을 고르는 건 맨 마지막 순서죠.”

그의 꽃 철학은 ‘심플하고 깨끗하고 재밌게’이다. 주황색과 녹색, 노란색과 보라색 등 만화 같은 색상 배합을 좋아한다. 세 가지 이상 색을 한 작품에 섞지 않고, 한 가지 색을 사용할 땐 톤을 다르게 한다.

○꿈과 로맨스의 향연, 웨딩 꽃 데커레이션

7명의 스태프를 거느리며 1주일에 1만6000송이 꽃을 사용하는 그는 이 호텔에 근무하기 시작한 1999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똑같은 디자인을 선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 달 동안 그가 사용하는 꽃 장식에는 무려 6만5000유로(약 1억270만 원)가 든다.

지난해 미국 여배우 에바 롱고리아의 결혼식은 그의 꽃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예식장은 흰색 심비디움과 수국으로 장식해 성스러운 느낌을 강조했고, 연회장에는 빨간색 테이블보 위에 탐스러운 빨간 장미를 가득 올렸다.

그는 “꽃은 꿈과 로맨스의 향연인 결혼식을 돋보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디자인 요소”라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다이아몬드나 진주 브로치를 웨딩 부케 손잡이에 달아 장식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방한 기간 중 신라호텔에서 웨딩 꽃 시연회도 열었다. 보라색과 파란색 수국, 흰색 호접란, 주황색 카라 등이 고급스럽게 어우러져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가 시종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신라호텔은 앞으로 리섬 씨의 조언을 웨딩 꽃 데커레이션에 활용할 계획이다.

“나는 웨딩에서 ‘흰색+α’를 추구합니다. 흰색 웨딩드레스의 허리에 검은색 실크 벨트를 두른 뒤 빨간색 부케를 들면 좀 더 강렬하죠. 결혼식 때 흰색 꽃만 고집하지 말고 분홍색과 노란색도 적극 활용해 보세요.”

○센 강에 주황-빨간색 장미꽃 띄우는 이벤트 하고싶어

미국 유타 주 출신인 그는 20대 때 패션모델 일을 했고, ‘갭’ 매장의 판매 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가 199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포시즌 호텔의 플라워숍에 입사원서를 낸 것은 직장을 찾기 위한 한 방편일 뿐이었다.

정식 플로리스트 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이곳에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해 파리 포시즌 조지Ⅴ호텔로 스카우트됐다. 이후 꽃을 ‘존경’하는 프랑스 상류층 고객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꽃은 이래야 한다’는 선입관에서 자유로워지세요. 당신의 직관과 기분을 따르면 창의적 스타일을 만들 수 있어요. 스스로를 3차원 공간을 디자인하는 조각가라고 여겨도 좋고요.”

그는 그동안 알렉산더 매퀸, 지방시, 스와로브스키 등 패션 브랜드들과 아트 작업을 했고 최근에는 에르메스, 롤스로이스와도 협업했다. ‘결국엔 시드는 꽃이 아쉬워서’ 양초와 꽃병 등을 갖춘 ‘리섬 바이 제프 리섬’이란 인테리어 소품 브랜드도 올해 초 선보였다.

언젠가 작업하고 싶은 세계적 건축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파리 센 강에 주황색과 빨간색 장미 꽃잎을 가득 띄우는 이벤트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개인적으로) 꼭 해보고 싶은 것을 물었다. 이내 눈망울이 촉촉해지면서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고 했다. 파리에서 온 ‘꽃을 든 남자’는 역시나 감성이 충만한 로맨티스트였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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