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비보이들과 함께 뜁니다”

  • 입력 2008년 6월 17일 03시 04분


1일 경기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08 국제비보이대회’에서 ‘MC고’ 우정훈 씨가 관중에게 출전팀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제공 프레인
1일 경기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08 국제비보이대회’에서 ‘MC고’ 우정훈 씨가 관중에게 출전팀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제공 프레인
‘영원한 큰형’ MC고, 하반신 마비 딛고 ‘비보이 전문 MC’로 제2인생

한국 비보이들의 ‘영원한 큰형’으로 통하는 MC고(본명 우정훈·29).

1일 경기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08 국제비보이대회’에서 그는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랐다. 비보이가 아닌 ‘MC 우정훈’이었다. 몸동작 하나하나에 비트박스 추임새를 넣으며 후배들을 격려하던 우 씨는 우스갯소리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나가시면서 화장실에 침 뱉지 마세요. 휠체어 바퀴에 침이 묻으면 손을 두 번 씻어야 돼요.”

화장실에 침을 뱉는 게 왜 나쁜지 우 씨도 1년 반 전에는 알지 못했다.

2007년 1월 14일 우 씨는 중환자실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가슴은 으스러지듯 아팠지만 다리엔 아무 감각이 없었다. 부산 공연을 마치고 상경하다 차가 전복되면서 하반신이 마비됐다. 당시 그는 결혼한 지 6개월 된 새신랑이었다.

한국의 첫 비보이 팀 ‘NY크루’의 창립 멤버이자 각종 세계대회를 휩쓸며 힙합댄서로 명성을 날리던 우 씨는 ‘다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갈비뼈가 부서져 폐가 찢어지고 척추가 어긋나 최소 1년은 치료해야 한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 씨는 8개월 만에 퇴원했다.

그가 찾은 새 길은 ‘비보이 배틀’ 전문 MC.

일반 사회자와 달리 우 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보이 댄서들의 치열한 경합을 생생히 중계했다. 화려한 율동 못지않게 유려한 입담을 인정받은 그는 비보이 공연 MC ‘섭외 0순위’로 꼽히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우 씨의 힘겨운 재활 과정에서 가장 큰 힘이 된 사람은 아내 김성희(30) 씨였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을 위해 김 씨는 강해지는 법을 배워야 했다.

김 씨는 “청천벽력 같은 사고 후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없지만 남편 앞에서 내가 무너지면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같은 경험을 가진 가수 강원래, 김송 씨 부부도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우 씨와 절친했던 동료 댄서 김송 씨는 강 씨와 함께 자주 문병을 왔다.

강 씨는 하반신을 못 쓴다는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하는 가족을 대신해 우 씨에게 “이제 걸을 수 없으니 빨리 받아들이고 그 다음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우 씨는 서럽고 분했지만 자신을 일으켜 세운 건 강 씨의 냉정한 충고였다고 말했다.

“한순간에 불구가 된 사람은 다시 걷게 되리란 부질없는 희망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 받을 생각만 해요. 그러면 끝내 사회로 돌아올 수 없죠. 못 걷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새 길이 보였어요.”

우 씨는 1일 ‘2008 국제비보이대회’ 진행을 맡으며 국제무대 사회자로 데뷔했다.

“휠체어에 앉아 나비처럼 나는 후배들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힐 정도로 몸이 근질거려요. 그래도 무대에 오르면 심장은 그들과 함께 뛰어요.”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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