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소재 ‘민족’ 지고 ‘일상’ 뜬다

  • 입력 2008년 4월 29일 02시 58분


《50대 여성이 딸의 남자 친구와 벌이는 사랑을 코믹하게 다룬 저예산 영화 ‘경축! 우리사랑’이 개봉 2주 만에 1만 관객을 넘겼다. 10억 원이 넘지 않는 제작비의 저예산 영화로는 눈에 띄는 성적이다. 기획사는 “입소문이 돌며 관객이 꾸준히 들고 있다”며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줌마를 내세워 중년 여성의 감춰진 욕망을 다룬 것이 신선하게 비친 것 같다”고 말했다.》

저예산 ‘경축! 우리사랑’ 의외 선전

‘일상’ 스토리 상반기 극장가 점령

‘일상’이 한국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

올해 1∼3월 개봉작들을 보면 ‘밤과 낮’ ‘경축! 우리사랑’ ‘동거, 동락’ ‘뜨거운 것이 좋아’ ‘기다리다 미쳐’ ‘6년째 연애 중’ ‘내부순환선’ ‘바보’ ‘마지막 선물’ 등 일상을 배경으로 평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개봉을 앞두거나 제작 중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판자촌에 사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삶을 담은 ‘방울토마토’(5월 29일 개봉)나 곗돈을 갖고 도망친 계주를 찾아 나서는 동네 여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걸스카우트’(6월 5일 개봉)처럼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거나, 한 남자를 두고 할머니 어머니 딸 등 삼대가 경쟁하는 이야기를 다룬 ‘흑심모녀’(6월 12일 개봉), 두 남자와 동시에 결혼한 여자를 다룬 ‘아내가 결혼했다’(촬영 중)처럼 일상에서의 일탈을 다룬 작품이 많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 ‘추격자’가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한 배경에는 일상에 대한 친숙함이 한몫했다는 분석이 많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스릴러의 묘미도 있지만 내 주변이나 일상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범죄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개봉한 ‘원스 어폰 어 타임’ ‘라듸오 데이즈’와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모던보이’ 등 1930, 4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도 ‘일상성의 연장선’에서 등장한 작품이다.

MK픽처스의 정금자 실장은 “‘1930, 40년대 경성’이라는 시대와 공간은 식민 통치의 상징성보다는 모더니티의 일상적 상징으로 영화에서 활용되고 있다”며 “라디오나 모던보이 등을 통해 당시의 일상이 미시적 관점에서 다뤄졌다”고 말했다.

‘쉬리’-‘태극기 휘날리며’ 흥행 옛추억

대박코드 ‘민족’ 이제는 관심 밖으로

일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때 한국 영화를 지배했던 ‘민족’은 밀려나고 있다.

1999년 ‘쉬리’의 성공을 기점으로 지난 10년 동안 한국 영화의 단골 소재 중 하나는 ‘민족’이었다. ‘공동경비구역 JSA’ ‘흑수선’ ‘태극기 휘날리며’는 ‘민족’이라는 묵직한 주제로 흥행에 성공했다. ‘태풍’ 등 ‘민족’을 소재로 만들어진 대작들이 뒤를 이었다. 남북 이산가족 이야기를 다룬 ‘간 큰 가족’(2005년)과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웰컴 투 동막골’(2005년) 등이 성공했으나 이후 ‘민족’을 앞세운 영화들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06년 탈북자 이야기를 그린 차승원 주연의 ‘국경의 남쪽’이 실패한 데 이어 지난해 여름 임창정이 출연한 ‘만남의 광장’ 이후 ‘민족’을 소재로 한 영화는 사라졌다.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김봉석 씨는 “‘민족 코드’의 영화는 금기시돼 왔던 민족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신선한 자극을 주었으나 북한 사회의 면모가 공개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이제는 대중의 눈이 현실적인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범죄, 결혼, 연애 등 일상으로 모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는 “‘민족 코드’는 워낙 많이 다뤄져 식상한 소재가 됐다. 새로운 접근법이나 이야기가 아니라면 굳이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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