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8월 28일 새벽, 갑갑한 여름 자락의 끝. 영국 경찰관 토머스 루이스의 생후 6개월도 안 된 아기는 밤새 칭얼댔다. 오전 6시경, 토하기 시작한 딸아이는 톡 쏘는 냄새의 초록색 설사를 했다. 아내는 들통에 담긴 물에 기저귀를 빨고, ‘늘 하던 대로’ 건물 앞 오물 구덩이에 물을 버렸다. 19세기 중반 런던을 강타한 콜레라는 그렇게 시작됐다.
‘바이러스 도시’는 일종의 역사 다큐멘터리다. 거대 도시 런던을 짓밟은 콜레라의 발생과 확산 경로를 쫓아간다. 2001년 개체의 합에서 새 요소가 발현되는 자연의 ‘창발성’을 설명한 과학저술서 ‘이머전스(Emergence)’로 주목을 받았던 저자가 공중위생 문제로 야기된 전염병의 ‘감염 지도’를 촘촘히 복원한다.
저자가 다룬 시기는 콜레라가 발생한 날부터 9월 8일까지 열흘 남짓. 하지만 짧았던 역사의 한 순간은 날렵한 문체를 거치며 긴박감을 자아낸다. 특히 당시 실제 ‘감염 지도’를 만들었던 존 스노 박사와 그를 도왔던 헨리 화이트헤드 목사의 행적은 스릴러 영화의 주인공만큼이나 흥미롭다.
하지만 ‘바이러스 도시’를 역사소설 수준으로 치부하면 오산이다. 저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염병과 문명의 진화가 빚어내는 상관관계를 세련되게 짚어낸다. 발병 원인을 놓고 과학과 과학이 충돌하는 패러다임 논쟁은 지금 시대에도 울림이 크다.
무엇보다 이 책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현재 지구가 처한 모습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 진정 국면이었던 전염병은 21세기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한반도도 조류인플루엔자로 고역을 치르고 있으니. 다시 시작된 바이러스 침공. 새로운 ‘감염 지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 책은 일깨우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