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향하는 소수교회가 한국기독교 희망

  • 입력 2008년 3월 24일 04시 01분


이재철 목사는 “교인이 10명에 불과해도 참된 교회라면 부자 교회”라고 말한다. 김미옥  기자
이재철 목사는 “교인이 10명에 불과해도 참된 교회라면 부자 교회”라고 말한다. 김미옥 기자
이재철(59) 목사는 언론과의 접촉을 기피하는 목회자로 소문나 있다. 하지만 언론은 그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갖는다. 그가 목회자로 나서면서 다짐했던 세 가지 목표를 20여 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1988년 52명의 교인과 함께 서울 강남 YMCA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면서 그는 ‘예배당을 절대 소유하지 않는다’ ‘한 교회에서의 목회활동은 10년을 넘기지 않는다’ ‘헌금의 50%를 구제(救濟)에 쓴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신도가 3000여 명으로 늘어나자 할 수 없이 미션스쿨인 송파구 잠실동 정신여고에 무상으로 강당을 지어 주일에만 예배 장소로 사용했고, 10년 임기를 단 하루도 넘기지 않고 훌쩍 ‘주님의 교회’를 떠났다.

그는 후임 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신도가 100여 명에 불과한 스위스 제네바 한인교회를 택했다. 3년여 만에 귀국해서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인근 교회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주위에서 많은 청빙(請聘)이 있었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뜻밖에 2005년 7월 10일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회가 서울 마포구 양화진에 설립한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20일 모처럼 그를 만났다. 26일 오후 6시 교회 안 ‘양화진 묘역’ 내에서 문을 여는 ‘양화진홍보관’과 ‘양화진홀’ 개관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잘나가는’ 목사님이 ‘묘지교회’에 부임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곳 양화진은 이 땅의 복음화와 근대화를 위해 헌신한 외국인 선교사 6개국 143명이 안장돼 있는 유서 깊은 기독교 성지입니다. 연세대 설립자인 언더우드 일가 4대 7명을 비롯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이화여대 설립자인 스크랜턴 대부인, 평양 숭실대 설립자인 베어드, 배재학당과 정동교회 창립자인 아펜젤러, 한국 백정(白丁)을 해방시킨 무어, 독립유공자인 헐버트 박사 등 잊을 수 없는 한국인의 은인들이지요. 저는 이곳 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의 소명(召命)을 ‘양화진 묘지기’로 받아들입니다. 양화진은 한국개신교의 시발점이자 정점(頂點)인 동시에 200주년을 향한 못자리판입니다.”

―목사님 부임 후 교회가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주일에 4부 예배를 보는데 어른 2700여 명, 어린이와 청소년이 300여 명 나옵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언제 위기가 아닌 적 있었던가요?(웃음) 1920, 30년대에도 뜻있는 목사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탓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뿐인가요. 성경을 보면 인간은 항상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늘 소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에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소수의 한국 기독교인과 교회를 보면 여전히 소망을 갖게 됩니다.”

―교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개념을 교인 수로만 규정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좋은 교회인가 하는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교인이 10명에 불과해도 참된 교회라면 그건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부자 교회입니다. 일본 가나자와(金澤) 시의 나가오 마키(長尾卷) 목사는 일평생 목회를 하면서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단 한 사람만을 구원했지만, 바로 그 사람이 ‘일본 빈민의 아버지’이자 일본 기독교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00주년기념교회에서도 10년 임기만 채우실 건가요?

“다행히 은퇴 전후로 정년(70세)이 됩니다. 제 다음에 부임하는 목회자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 목사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그에 대해 외경에 가까운 존경심을 갖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이 목사는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아침까지는 일절 약속을 하지 않고 오직 설교 준비만 한다. 자기 이름으로 된 부동산이나 통장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올해에는 각 지역 구역장으로 구성된 교회 상임위원회에서 담임목사 월급을 인상하자고 결정했으나 본인이 극구 사양해 최소액만 올렸다고 한다.

‘주님의 교회’에 다녔으나 이 목사를 따라 교회를 옮기지는 않은 전직 장관 출신의 한 기독교인은 “이 목사는 철학가(哲學家)를 넘어 철인(哲人)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외국인 선교사 143명 묻힌 성지

양화진홀 홍보전시관 26일 개관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100주년기념교회, 마포구청이 함께 세운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홀’. 이 땅의 복음화와 근대화를 위해 헌신했던 외국인 선교사 143명이 안장된 이곳에 홍보전시관이 건립돼 26일 개관한다.

오후 6시 묘역 순례에 이어 감사예배, 테이프 커팅 및 리셉션에 축하 음악회가 열린다. 일반인 관람은 27일부터. 일요일 휴관. 02-332-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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