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5>특이점이 온다

  • 입력 2008년 3월 21일 02시 58분


《“우리가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온갖 개념들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 특이점을 이해하게 되면 지나간 과거의 의미와 미래에 다가올 것들에 대한 시각이 바뀐다. 보편적 삶이나 개인의 개별적 삶에 대한 인생관이 본질적으로 바뀐다.”》

‘특이점(singularity)’은 주로 천체물리학에서 블랙홀 내 무한대 밀도와 중력의 한 점을 뜻하는 용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과학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문명이 도래하는 시점’을 가리킨다. 특이점이 오면 인간은 기계가 되고 기계는 인간이 된다. 아니, 인간은 신이 된다.

그럼 병에 걸리거나 늙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전자를 조작해 미리 방지하고 장기를 교체하면 된다. 힘들여 공부할 필요도 없다. 지식과 경험을 뇌에 내려받으면 되니까. 뇌 속에 들어간 수많은 나노 로봇은 다양한 가상현실 속의 신나는 경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 심지어 감정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또 한 30년만 지나면 뇌를 스캔해 싫증날 때마다 다른 몸으로 바꿔가며 영원히 살 수 있다. 인간의 육체는 단지 이것들을 담는 ‘용기’에 불과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자체가 뒤집어진다.

뛰어난 발명가이면서 미래학자이자 사상가인 저자는 “특이점이 반드시 등장할 수밖에 없으며 더구나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유전공학 나노기술 인공지능 등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생물학의 원리들을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게 됐다. 또 ‘기술가속의 법칙’에 따라 정보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족히 100년은 걸릴 것 같은 일이 1년 만에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과학이 이뤄내는 꿈같은 세상. 그러나 여기서는 인간의 본질과 정의가 달라진다. 생물학적 부분보다 비생물학적 부분이 더 많은 존재는 과연 인간일까.

그러나 저자는 그런 의문이 필요 없다고 한다. ‘인간다움’의 속성, ‘기계’의 정의, ‘비생물학적 지능’에 대한 생각이 뿌리부터 바뀔 것이니까. 저자는 자신을 특이점주의자라고 칭하지만 그의 주장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사상’으로 꼽은 트랜스 휴머니즘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트랜스 휴머니즘 역시 우리가 과학기술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어 영생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책을 추천한 이명현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은 “역설적으로 이런 미래를 위해서 (또는 대항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성찰하게 해주며 이 부분에서 다(多)학문적 논의의 장이 열린다”고 말했다.

저자의 대담한 주장에 열광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허황된 얘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저자는 생각이 다르다. ‘당신들은 감히 기계 따위가 위대한 인간과 어떻게 맞먹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지만 아니다. 세상은 바뀌고 특이점은 분명히 온다.’ 저자는 그래서 비판에 대한 반론에만 70여 쪽을 할애했다.

저자의 예측은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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