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佛 한국친우회’를 아시나요

  • 입력 2008년 3월 1일 03시 21분


나중에 프랑스 한국친우회 회장이 된 루이 마랭(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901년 시베리아 몽골 만주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아시아 여행을 할 당시의 모습. 사진 제공 안종웅 박사
나중에 프랑스 한국친우회 회장이 된 루이 마랭(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901년 시베리아 몽골 만주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아시아 여행을 할 당시의 모습. 사진 제공 안종웅 박사
거물 정치인 마랭이 臨政 ‘파리위원부’ 지원위해 1921년 결성

안종웅 在佛역사학자 밝혀

제1차 세계대전 후 국제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1919년 1월 개막한 파리강화회의. 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4월 13일 상하이에서 수립된 즉시 상하이 신한청년당 대표 김규식(金奎植)을 이 회의에 파견했다. 김규식은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가 파리에 머무른 약 7개월 동안 무려 180여 개의 프랑스 신문이 한국 문제를 500여 차례나 다뤘다. 김규식은 어떻게 이토록 큰 관심을 끌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는 한국을 응원한 프랑스 정계와 언론계의 든든한 인맥이 있었다. 이들의 인연은 프랑스 한국친우회(Les Amis de la Cor´ee)로 이어졌고 이후 한국인들에게 유럽에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조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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