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책이 짐이 되는 세상… 헌책방의 추억

  • 입력 2008년 3월 1일 03시 01분


그곳엔 냄새가 난다.

시큼털털. 책을 펼치면 더하다. 학창 시절 뒷간 낙서마냥 구리지만 정겹다. 같은 한자어투인데 고서점이라 부르면 맛이 안 나는 곳. 바로 헌책방이다.

요즘 헌책방을 보기 어렵다. 부산엔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 아직 있다지만 서울은 그렇다. 청계천 상가가 밀려나고 대학가도 문을 닫았다. 하긴 새 책 파는 서점도 동네에선 귀한 판에…. 아마 전파상과 고물상, 레코드가게가 사라질 즈음이다.

물어물어 헌책방을 찾았다. 생각보다 가깝다. 동교동 삼거리의 길벗서점. 30년째 헌책방을 한다는 김현숙(52) 사장에게 걸쭉한 ‘다방커피’ 한잔을 얻어 마셨다.

김 사장은 알 사람은 다 안다는 헌책방 ‘온고당’의 전(前) 주인. 지난해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새로 길벗을 냈다. 왜 내내 헌책방일까. “신간 다루는 건 익숙지 않아서…. 큰돈은 못 벌어도 애들 책값 안 들어서 좋소.” 너털웃음이 터졌다.

그 웃음만큼 책방 안은 느긋했다. 네댓 손님 모두가 사장과 안면이 있는 눈치다. 정가의 반도 안 받는 책값, 전화 받느라고 기다렸다고 얼른 500원을 더 빼 준다.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부터 들락거리던 30, 40대가 대부분 단골손님이란다.

참고서 사자마자 헌책방에 팔아먹던 시절. 하지만 요즘은 그런 ‘손님’은 없다. 학생은 드물거니와 와도 타일러 보낸다. 입학 졸업 시즌 대목도 사라졌다. 대부분 이사 가며 처분한 책들이 들어온다. 책이 짐이 되는 세상이다.

“예전엔 헌책방도 시끌벅적했죠. 슬쩍 찢거나 가져가는 녀석들도 어찌 많은지. 15년 전쯤인가, 요즘보다 추운 겨울밤에 누가 돈 봉투를 놓고 갔습디다. 그간 돈이 없어 책 몇 권 훔쳤는데, 아르바이트로 모았다며. 그런 추억은 사라졌죠.”

사라진 까까머리 자리엔 ‘마니아’가 들어섰다. 젊은 고객은 옛날 책, 희귀본을 모으는 이가 대부분이다. 김기림 정지용 시인 초기 작품은 찾는 대로 연락 달라고 사정하고 간다. 절판된 최명희의 ‘혼불’,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 초판본도 없어서 못 판다.

그 많던 헌책방은 어디로 갔는지. 대부분 전업하거나 지방으로 내려갔다. 들리는 소문엔 파주 쪽으로도 많이 갔다. 헌책방, 아직 있긴 있는데 대부분 ‘인터넷 헌책방’이다.

“고육책일게요. 시내 임대료가 좀 비싸야지. 모르는 사람은 조용한 외곽으로 가라지만 요새 변두리라고 싼가. 헌책방은 사람 만나는 맛에 하는데 그치들도 재미없을 거요.”

그래도 김 사장은 버틴다. 할 때까진 할 거란다. 술집만 즐비하고 책방은 없는 서울 풍경이 보기 싫어서라도. 별 도움 되겠느냐만 아멜리 노통의 ‘반박’을 집어 들고 셈을 하다 질문을 하나 던졌다.

“참, 요새 헌책방 베스트셀러는 뭔가요?” “그야… 좋은 책이 잘 팔리지.”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모자란’ 기자를 대하느라 고생하신 사장님. 커피 잘 마셨습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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