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방통위 대통령 직속 행정기구로” 법안 발의

  • 입력 2008년 1월 29일 02시 59분


방송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지상파 방송 재허가와 관련된 회의를 열고 있다. 민간기구인 방송위가 책임지는 행정 구현에 실패했다는 지적에 따라 새로 만들어질 방송통신위원회를 합의제 행정기구로 바꾸는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방송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지상파 방송 재허가와 관련된 회의를 열고 있다. 민간기구인 방송위가 책임지는 행정 구현에 실패했다는 지적에 따라 새로 만들어질 방송통신위원회를 합의제 행정기구로 바꾸는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책임-일관행정 위해 위상 바로잡아야”

한나라당이 21일 방송과 통신을 아우르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대통령 직속의 합의제 행정기구로 하는 법률안을 발의함에 따라 방통위의 위상과 역할 등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방통위는 방송위가 정보통신부의 기능을 흡수해 확대 개편되는 것으로 방송 통신의 정책 및 규제 기능을 맡게 돼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방통위는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대통령이 2명은 직접 임명하고 나머지 3명은 국회 교섭단체의 추천을 받아 임명한다. 따라서 여소야대가 되더라도 여당 3명, 야당 2명으로 구성된다.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은 “책임 행정을 구현하기 위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모델을 ‘원용’해 대통령 직속의 행정기구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반면 FCC는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미국 연방정부 기구이며 대통령 직속 기구일 경우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책임 행정의 구현=방통위를 합의제 행정기구로 정해 정부조직법 안에 포함시킨 것은 민간 합의제 기구로 출범한 현 방송위의 부작용에 대한 대책의 일환이자 매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책임 행정을 구현하기 위한 조치다.

방송위는 2000년 출범 당시 중립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독립된 합의제 민간 기구로 설립됐다. 방송위는 방송사 재허가 등 방송 정책은 물론 KBS 이사회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선임권 등 방송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확보했다.

그러나 방송위는 지난 8년간 정부 정책 및 행정기구에 요구되는 책임성과 일관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이를 견제할 기관도 없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방송위는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전송 문제를 3년여간 끌어 왔고 탄핵 방송의 편파성을 둘러싼 논란 때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발뺌하는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를 두고 ‘방송위가 권한만 있고 의무는 없다’는 방송계의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현 정부도 2007년에 제출한 방통위 법안에서 방통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행정기구화하는 안을 내놓았다. 정책 기능을 민간에 맡긴 8년간의 실패를 현 정부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정치적 독립성 논란=대통합민주신당은 방통위가 대통령 직속으로 들어가면 정치적 중립성이 결여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이 방통위원 2명을 임명하도록 하면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쉽다며 위원을 모두 국회에서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통령 직속 기구나 국회 추천 방식이 모두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절대 조건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현 방송위의 실패로 볼 때 방송의 독립성은 법적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 FCC는 의회로부터 방송 통신 업무를 위임받은 연방정부의 독립기관이다. 하지만 FCC 위원 5명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의 승인을 받는다. 한국의 방통위보다 대통령의 입김이 더 많이 들어갈 수 있는데도 방송의 독립성을 우려하는 지적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한 방송학자는 “FCC의 위원 임명과 구성은 사실상 대통령과 여당의 정책 기조를 반영한다고 봐야 한다”며 “대의제 국가에서 대표성을 얻은 여당의 정책이 방송 통신 분야에서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심의 기능의 분리=이번 법안의 특징 중 하나는 심의 기능을 민간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이관한 것이다. 이 위원회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방송 통신과 관련한 내용 심의를 한 뒤 제재 수위를 정해 방통위로 통보한다. 방통위는 심의위의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각 방송 통신 사업자에게 시정 등을 지시하는 명령을 내린다. 심의위를 민간에 맡긴 것은 심의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 방통위 모델 美 FCC는

연방정부의 독립기관이지만

위원 5명 모두 대통령이 임명

미국 FCC는 합의제 연방정부기구로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장과 위원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한다. 특정당 소속 위원이 3명을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임기는 5년으로 연임이 가능하다.

FCC는 방송과 통신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방송사업자 인허가 업무와 주파수를 관리한다. 시행규칙을 제정하는 준입법권과 사업자 간 분쟁을 조정하는 준사법권도 갖는다. FCC의 결정 사항은 1심 법원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FCC처럼 방송 통신 정책과 규제 기능을 포괄하는 독립기구를 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FCC는 최근 심의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 ‘니플게이트(Nipplegate)’다. 2004년 CBS가 생방송한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여가수 재닛 잭슨의 유두 노출 사고가 일어나자 FCC는 55만 달러의 벌금을 물렸다. CBS가 제소해 계류 중이다.

FCC가 발표한 올해 추정 예산은 3억1300만 달러(약 2987억 원). 이 중 정부 예산이 일부이며 나머지는 면허 허가 등의 수수료 수입이다. 수수료는 의회 승인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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