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감동시킨 ‘시인 김수영’

  • 입력 2007년 11월 1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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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있다/여보/움직이는 비애(悲哀)를 알고 있느냐’(김수영, ‘비’에서)

계간 ‘시인세계’가 시인 109명에게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를 질문한 결과 가장 많이 언급된 시인은 김수영(1921∼1968)이었다. ‘시인세계’는 이번 주에 나오는 겨울호에 조사 결과를 실었다.

강은교 씨는 김수영의 시 ‘꽃잎 2’ 중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를 소개하면서 “그에게서 리듬이 왔다”고 밝히고, 천양희 씨는 “내가 초극해야 할 또 다른 절망이며 시작(詩作)에 가해야 할 박차”로 ‘비’를 소개하는 등 시인 14명이 ‘황홀한 절정을 맛보게 한 가장 빛나는 표현’으로 김수영 시인의 작품을 꼽았다.

나희덕 시인은 김수영의 ‘사랑의 변주곡’ 중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는 시구를 인용하면서 “폭력적 질서에 갇혀 있는 나의 시들을 화들짝 깨우는 말”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강정 씨는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헬리콥터’에서)를 들면서, “시적 자유와 삶의 자유를 등가로 봤던 김수영에게 자유란 늘 새롭게 돌이켜야 하는 양심의 나침반”이라고 말했다.

김수영에 이어 서정주(1915∼2000) 시인을 9명이 추천했다. 정진규 씨는 “벼락으로 다가왔다”면서 ‘동천(冬天)’ 전문을 소개했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즈문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허만하 씨는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는 정지용(7명 추천)의 시 ‘백록담’의 한 구절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서움의 시작”임을 간파했고, 이승훈 씨는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는 이상(6명 추천)의 ‘아침’의 시구에서 시인의 병든 내면을 찾아냈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백석(6명 추천)의 시구에 대해 안도현 씨는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우주에 눈이 내린다니!”라며 감탄을 보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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