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인류가 사라졌다…‘인간 없는 세상’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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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지음·이한중 옮김/428쪽·2만3000원·랜덤하우스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언론에 등장하는 시계다. 1947년 미국 핵과학자들이 핵 위협을 경고할 목적에서 만들었다. 핵무기를 탄생시킨 나라가 각성을 촉구하다니. 모양새가 우습긴 해도 지구 종말 몇 분 전이란 말은 들을 때마다 섬뜩하다.

올 1월에도 시계는 다시 등장했다. ‘종말 5분 전.’ 17일자로 2분이 앞당겨졌다. 처음으로 핵무기가 아닌 환경적 요소가 포함됐다.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 인류가 서로 치고받지 않고 ‘그냥 이대로 살기만 해도’ 지구는 멸망할 수 있단 소리다.

‘인간 없는 세상’은 도대체 인간이 무슨 짓을 했기에 지구가 이 정도로 망가졌는지에 대한 우울한 고찰이다. 저자는 그저 한 가지 가설만 세워 본다. “우리가 아주 고통스럽게 많은 생물 종을 함께 끌고 서서히 멸종해 나간다는 게 아니다. (인류가) 느닷없이 사라져버린 뒤의 세상을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 그것도 내일 당장 말이다.”

인류가 사라진 지구는 하룻밤 새 변하기 시작한다. 지하철역과 통로에 물이 차 2일 뒤면 통행이 어려워진다. 일주일이면 원자로 발전기의 비상연료 공급이, 1년 뒤면 전류 공급이 끊긴다. 해마다 고압전선에 부딪혀 희생되던 조류 10억 마리가 살 수 있다. 핵무기가 터져도 살아남는다던 바퀴벌레는 도시의 온기가 사라져 3년 뒤쯤 멸종한다. ‘인간만 없으면’ 100년 안에 생태계가 다시 균형을 찾는다. 그것도 더욱 풍성하게.

물론 지독했던 인류의 발자취는 흔적도 끈질기다. 조리기구의 플라스틱 손잡이는 500년이 지나도 멀쩡하다. 굴뚝산업으로 토양에 침전된 납이 씻겨 나가려면 3만5000년, 카드뮴은 7만5000년이 걸린다. 이산화탄소 수치가 인류 이전 수준으로 낮아지는 덴 최소 10만 년이 필요하다. 영원한 것도 있다. 라디오와 TV 방송 전파는 계속해서 외계를 떠돈다.

저자는 앉아서 상상의 ‘설’을 풀지 않는다. 러시아의 체르노빌, 아프리카와 아마존 등 세계를 누비며 증거를 찾는다. 매머드보다 컸다는 자이언트나무늘보 같은 초대형 포유류의 멸종 사유를 뒤쫓고, 폴란드와 벨로루시 국경의 원시림에서 지구의 자기 치유력을 확인한다. 너무 꼼꼼해 가끔 지루하지만 지구와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샅샅이 되짚는다.

그렇다고 책이 인류를 지구의 적으로 몰아붙이는 건 아니다. 인류가 지구와 공존하는 법을 찾는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그 희망의 실마리를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에서 본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하던 이곳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사라질 뻔한 야생동물의 피난처가 됐다. (비무장지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화해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한다.”

미래서(書)는 가설에 불과하다. ‘인간 없는 세상’의 예측도 틀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옳고 그름에 있지 않다. 현재 지구가 고통 받고, 그게 인류의 원죄이자 재앙이라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없어도 지구는 남는다. 하지만 지구가 없다면 우린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종말 5분 전’에 떨기보단 ‘부활 5분 뒤’ 행복하고픈 마음. 저자는 ‘지구와 화해한 인간 있는 세상’을 꿈꾼다.

원제 ‘The World without Us’(2007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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