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개혁을 꿈꾼 파라오의 좌절…‘시누헤’

  • 입력 2007년 9월 1일 03시 03분


◇시누헤(전 2권)/미카 왈타리 지음·이순희 옮김/1권 400쪽, 2권 376쪽·각 권 1만 원·동녘

이 이야기는 한 이집트 여인이 갈대배에 실려 떠내려 온 갓난아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어떻게 이집트 의사 부부의 손에서 자라나게 됐는지 고백하는 이 사내의 이름은 ‘시누헤’다. 의사였던 그는 파라오가 꿈꿨던 개혁이 실패한 뒤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있다.

핀란드 작가 미카 왈타리의 소설 ‘시누헤’는 1945년 첫선을 보였다. 1949년 영어로 출간된 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나오기까지 34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외국소설’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역사적 고증을 통해 복원된 고대 이집트인의 삶과 전쟁에 대한 생생한 묘사, 다양한 캐릭터 등 ‘흥행 코드’가 빛을 발한 것이다.

집안이 몰락한 뒤 시누헤가 이방을 떠도는 초반은 모험소설 같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에서 조명을 받는 것은 시누헤의 극적인 삶의 역경이 아니라, 그와 뜻을 같이한 파라오 아케나톤이다. 아케나톤은 신 앞에 인간은 평등하다며 노예를 해방시켰고 평화를 사랑한 반전주의자였다. 성경의 모세가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다고 전해지는 왕이다. 파라오의 주치의가 된 시누헤는 아케나톤의 정치활동을 지켜보면서, 인종평등 신분평등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개혁가이자 반전 평화주의자인 아케나톤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이 소설은 비평가들에게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가치가 붕괴된 세계를 고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라오가 개혁을 꿈꿀 만큼 비참했던 세상과 작가가 처한 전쟁 이후의 세계가 닮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혁은 실패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시누헤의 얼굴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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