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의 추모사

  • 입력 2007년 5월 26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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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로 시와 수필이 되시고 산호가 되고 진주가 되신 선생님

생전에도 뵙고 나서 돌아서면 금방 다시 그리워지던 금아 선생님.

병원에 입원하신 줄 모르고 예쁜 꽃카드와 생일(29일) 선물을 얼마 전 댁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십니까. 예쁜 엽서 한 장에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하신 선생님. 더는 제 카드를 읽을 수 없는 것인가요.

선생님께서 아니 계신 이 세상은 미리 상상만 해도 너무 쓸쓸하고 허전하여 가슴엔 자꾸 찬바람이 불었었는데 그런 날이 진정 현실이 된 것인가요? 이젠 멀리 하늘나라로 떠나신 것인가요?

어쩌다 서울에 가면 손수 자장면을 시켜주시고 즐겨 듣는 음악을 틀어 주시고 가족들의 사진과 그림도 보여주셨지요. 방에는 곰 인형 세 개를 두고 오며가며 대화도 한다고 눈가리개 한 곰을 가리키며 지금은 잠든 시간이라고 설명을 하셨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방문한 선생님을 어떻게 해서라도 좀 즐겁게 해 드리려고 어린이처럼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니 하하하 박수를 치며 기뻐하셨습니다. 서가에 있는 하얀 조가비에 ‘산호 진주 금아 그리고 영원한 사랑’이라고 제가 색연필로 쓴 것을 보물인 양 잘 보이는 곳에 놓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하도 오래 살다보니 사람들은 그이가 아직도 살아있어요? 하고 묻는대요. 오, 글쎄… 얼마나 민망한지!” “나는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서 부끄러워” “고령의 노인이 되어서도 인간에게 명예심은 가장 큰 유혹인 것 같아” 하고 종종 한숨을 쉬시기도 하셨지요.

늘 ‘사랑하고 떠난 이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하시던 선생님. 작은 놀라움, 작은 웃음, 작은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고 쓰신다던 선생님. ‘우리나라 수필 문학의 살아있는 교과서’라는 그 칭호가 잘 어울리는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께 작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욕심 없이 세상을 사는 맑고 순한 지혜를 배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남을 먼저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배웠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구절이 인간미가 느껴져 ‘주님의 기도’를 가장 좋아하신다던 우리 선생님. 성 프란치스코처럼 자연과 어울리고 인간을 사랑하신 선생님. 평화 가득한 음악소리와도 같았던 그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으면 우린 이제 어쩌지요?

자그만 체구의 선생님께서는 누구보다 크고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모든 이의 사랑 받는 연인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시던 가족 제자 친지 독자 자연 사물 그리고 작고 소박한 모든 것들에게 아름다운 고별인사를 남기시고 이제 먼 길로 떠나셨지만 맑은 사랑만은 두고 가신 거지요? 푸른 그리움만은 남기고 가신 거지요? 선생님께서는 이제 열 살 때 헤어진 엄마를 만나 거문고도 켜시고 로버트 프로스트, 잉그리드 버그먼도 만나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실 건가요?

존경과 사랑을 드리는 선생님. 부디 영원한 안식을 누리십시오. 떠나시자 이내 그리운 선생님. 그동안 우리와 함께하신 모든 시간들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이제 하늘빛 동심으로 돌아가 하느님과 만나신 하늘나라에서 그토록 좋아하시던 제9교향곡을 들으시고 멋진 플루트도 연주하시며 영원한 천상행복을 누리시옵소서.

존재 자체로 시가 되고 수필이 되신 선생님.

산호가 되고 진주가 되신 우리 선생님…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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