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공지희의 어린이 콩트]<4>나는 쥐가 되고 싶다

  • 입력 2007년 4월 2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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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우의 애완 고양이다. 명우는 나를 배 위에 올려놓고 살살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한다. “담이야. 사랑해.”

나는 명우 배 위에서 잠이 드는 게 좋았다. 오르락내리락 시소를 탄 것처럼 재밌어서 가릉 가르릉 소리가 저절로 났다. 명우의 엄마 아빠가 직장에서 돌아오고 동생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저녁때까지 명우와 나는 단둘이 집을 지킨다. 명우가 자기가 핥던 아이스콘을 내 입으로 줄 때면 나를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 명우 방에 컴퓨터가 들어오고 컴퓨터에 기다랗게 꼬리를 붙인 쥐 한 마리가 같이 들어왔다. 명우에게 새 애완동물이 생긴 것이다. 명우는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명우는 이 쥐를 ‘마우스’라고 불렀다. 쥐를 애완용으로 키우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명우 동생 새롬이가 하얀 토끼를 품에 안고 집에 들어온 날도 이렇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명우는 컴퓨터 앞에 앉아 내내 그 쥐를 손으로 감싸 쥐고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미친 듯 손가락으로 쥐의 엉덩이 부분을 눌러댔다. 쥐는 ‘딸깍 딸깍 딸깍’ 딸꾹질 소리를 냈다.

30분에서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명우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 어떤 날은 헤벌쭉 웃기도 했다가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식구들이 집에 있는 날은 쥐가 있는 곳에 가고 싶어 안절부절못하고 그쪽만 바라보곤 했다. 명우는 점점 딴 아이가 되어갔다.

나는 명우를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다. 명우 발등에 이마를 비비며 놀아 달라고 가르가릉 해 보았다. 그런데 명우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내 머리통을 툭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애절하게 명우를 불렀다. 명우는 못 들은 척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미친 듯이 쥐의 엉덩이 한쪽을 눌러댔다.

놈의 쥐, ‘마우스’란 놈이 명우를 홀려버린 게 분명했다. 아, 나도 마우스가 되고 싶다.

아니다. 내가 누군가? 고양이 아닌가. 내가 성질이 좋아서 그렇지 바깥 고양이들이라면 저 괘씸한 쥐를 그냥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 온 가족이 집을 비운 아침, 나는 마우스를 노려보며 위협했다. 손톱으로 할퀴어 줬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새롬이가 키우는 베란다 토끼를 불렀다.

“저 쥐새끼를 혼내 줘.”

토끼는 컴퓨터에 연결된 가늘고 긴 쥐꼬리를 잘근잘근 씹어 끊어 놓았다. 나는 그것을 내 전용 변기 모래 속에 꼭꼭 파묻어 버렸다.

명우는 난리를 피웠다.

“내 마우스 어디 갔어? 마우스, 마우스, 마우스를 찾아야 해.”

나는 시침 뚝 떼고 피아노 위에서 잠든 척했다.

명우는 쥐를 찾지 못하자 이상해졌다. 안절부절못하고 집안을 왔다 갔다 하고, 울상을 짓고, 화를 내고, 심통을 부렸다. 나중에는 컴퓨터를 마구 두드려댔다. 그깟 쥐 한 마리 없어졌다고 저렇게 난리를 치다니…. 그놈은 무슨 수로 명우 마음을 홀딱 빼앗아 간 걸까? 나도 쥐가 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잠자려는 명우 배 위로 올라가 가릉가릉 소리를 냈다. 이젠 예전처럼 나와 놀아주겠지? 하지만 명우는 나를 침대 밖으로 홱 밀쳐냈다. 아, 너무 슬펐다. 나를 그렇게 좋아했던 명우가 아닌 것 같았다.

주말에 명우는 아버지와 전자 상가에서 쥐 한 마리를 또 가져왔다.

“야호! 신난다. 이제 몬스터 다 잡았어.”

명우의 눈빛은 살아나고 입이 헤벌쭉해졌다.

새로 온 쥐는 만만치 않아 보였다. 명우가 잠든 밤에도 저 혼자 밤새도록 기분 나쁜 불빛을 깜빡거리며 놀았다. 나는 이빨을 보이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고양이다. 너는 뭐하는 쥐냐?”

“나는 고스트 마우스다.”

그 쥐는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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