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파는게 구원, 함께 먹는게 예배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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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교회 텃밭에서 밭을 일구고 있는 임락경 목사.
시골교회 텃밭에서 밭을 일구고 있는 임락경 목사.
시골교회 텃밭에서 밭을 일구고 있는 임락경 목사.
시골교회 텃밭에서 밭을 일구고 있는 임락경 목사.
■ 강원 화천군 ‘시골교회’ 농사짓는 목사 임락경 씨

어딜 봐도 목사님으로 보이지 않는다. 밭일을 막 끝냈는지 바지엔 흙이 잔뜩 묻어 있다. 못이 박인 손, 깊게 파인 주름…. 교회에는 그 흔한 십자가 철탑도 없다. 기와집 한 채와 주변의 돌집, 돼지우리와 닭장, 비닐하우스, 100개가 훨씬 넘는 간장 된장 항아리….

‘촌놈’으로 불리는 강원 화천군 사내면 광덕3리 ‘시골교회’ 임락경(62) 목사의 첫인상은 농투성이 그 자체였다.

1960년대 초 16세 때 고향인 전북 순창군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농사를 짓다 뜻한 바 있어 ‘맨발의 성자(聖者)’ 이현필 선생이 운영하던 무등산 동광원에 들어가 결핵 환자들과 15년간 살았다. 1980년 군을 제대하고 화악산 자락 산골마을에 들어와 장애인 25명과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 옛날에는 버스로 재를 넘는 데만도 한 시간이 걸렸다는 광덕고개 인근이니 물 맑고 공기 좋은 것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전국을 돌며 벌을 치고, 사람과 돼지 닭의 똥으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콩으로 메주와 간장을 담가 내다 판다. 병자를 돌본 경험으로 요즘은 음식을 통해 병을 치료하는 ‘돌파리’(突破理·이치를 깨쳤다는 뜻) 건강 전도사가 됐다. 그래서 최근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들녘)는 책까지 냈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난 농사꾼이지. 돈 나오는 것이 농산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목사가 왜 농사를 짓느냐고 묻자 “정치인은 없어도 살고, 목사도 없으면 더 잘살지만 농사꾼이 없으면 죽어”라고 말한다.

장애인을 돌보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냥 여관 하나 식당 하나 운영한다고 생각하면 돼. 내가 봐도 내가 ‘정신이상자’ 같은데 장애인이니 뭐니 구분을 어떻게 해.” 처음에는 이들을 돕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살다 보니 내가 더 배워요.”

마침 기자가 도착한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예배당이자 숙소이기도 한 식당에서 식구들이 밥을 먹고 있다. 각종 나물과 김치볶음, 홍합미역국이 식단이다. 대식구가 살다 보니 쌀도 많이 들어간다. 일주일에 한 가마는 뚝딱 해치운다.

“일용할 양식만 달라고 기도했더니 정말 일용할 양식만 주시더군요. 목사님은 ‘여럿이 살면 그중 복 있는 사람 하나 때문에 다 먹고 살게 돼 있다’고 하셨어요.” 시골교회 장애인선교원 이애리(48) 원장이 옆에서 거든다. 장애인 누구 하나 오라고 해서 온 사람은 없다. 어떻게 찾아들어와 본인이 적응하면 그냥 산다.

외환위기 직후 대졸 실직자 10여 명이 들어와 동거한 적이 있다. “그때가 제일 머리가 복잡했고 비생산적이었어요. 그래서 바보가 더 많아져 골고루 섞여 살아야 세상이 좋아진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노동하고 밥 먹는 단순한 일상을 ‘먹물’들이 배겨 내지 못했던 탓일까.

이현필 선생이 타계(1964년)하기 전 3∼4년간 동광원에서 그를 만났던 임 목사는 “잔소리가 많으셨지, ‘병원 가지 마라, 학교 가지 마라, 고기 먹지 마라’. 주무시다 새벽에 홀연히 떠나 버리니 얼굴 뵙기도 힘들었어”라고 회고했다.

임 목사가 도시를 싫어하는 이유는 “생산은 안 하고 소비만 한다”는 데 있다. “땀 흘린 사람이 많으면 좋은 세상이지. ‘불한당(不汗黨)이 많으면 안 돼”라고 힘주어 말한다. 아토피에 대한 그의 진단. “먹을 것을 가려야지. 트랜스지방이 들어 있는 기름에 튀긴 음식이 주범”이란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병이 없어. 작년에도 의료비는 한 푼도 안 들어갔지.”

불편한 몸들이지만 식구들의 얼굴엔 구김살이 없다. 임 목사 앞에서 ‘구원’과 ‘구도’를 묻는 것 자체가 하찮게만 느껴져 말문을 닫았다. 이들에게는 삶 자체가 경이(驚異)요, 구원인 것을…. 033-441-4298

화천=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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