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자유의 냄새가 그립거든 스페인 톨레도로 가라

  • 입력 2007년 3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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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호 강에 둘러싸인 톨레도의 전경. 톨레도는 이슬람과 가톨릭 등 다양한 시대와 세력의 문화가 만나 또 하나의 이색적인 문화를 만들어낸 스페인 종교와 문화의 발원지다. 사진 제공 스페인관광청
타호 강에 둘러싸인 톨레도의 전경. 톨레도는 이슬람과 가톨릭 등 다양한 시대와 세력의 문화가 만나 또 하나의 이색적인 문화를 만들어낸 스페인 종교와 문화의 발원지다. 사진 제공 스페인관광청
스페인 성당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톨레도 대성당. 여러 시대에 걸쳐 개보수가 이뤄진 까닭에 건축역사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사진 제공 스페인관광청
스페인 성당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톨레도 대성당. 여러 시대에 걸쳐 개보수가 이뤄진 까닭에 건축역사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사진 제공 스페인관광청
레알 마드리드, 돈키호테, 플라멩코, 투우, 피카소…. 이 연상퀴즈의 정답은 물론 ‘스페인’이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관광대국. 스페인의 관광시즌이 투우 개막과 더불어 시작됐다. 올여름에는 인천과 마드리드 간 직항노선도 열릴 예정. 그래서 스페인을 오가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다양한 여행상품도 개발 중이다.

스페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수도 마드리드와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거머쥔 올림픽 개최지 바로셀로나가 아닐까.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도시는 톨레도다. 한국의 경주에 비견될 스페인의 고도(古都)로 지리적 중심에 있다. 톨레도의 특별함. 그것은 이슬람과 가톨릭 등 다양한 문화의 충돌로 탄생한 독특한 분위기다. 그곳으로 안내한다.

○ 이슬람과 가톨릭, 두 문화의 용광로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차를 달리기 한 시간쯤. 고갯마루를 넘자 언덕 아래 자리 잡은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톨레도다. 마치 거인이 손으로 빚은 듯 도시는 미니어처처럼 정교하다.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에 숨이 막힐 정도다. 타호 강에 둘러싸인 모습은 평화 그 자체. 저 모습이 1500년 당시 그대로라니. 유럽에서야 흔하겠지만 초고속 성장의 한국에서 온 여행자에게는 의외다.

1519년. 카를로스 5세는 톨레도를 스페인 제국의 수도로 선포했다. 당시 스페인의 수도는 유럽, 아니 대항해시대를 맞은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수도로서의 수명은 길지 않았다. 42년 후(1561년) 펠리페 2세가 황궁을 마드리드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레도의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1500년 역사의 도시는 종교 예술 문화의 중심지로 커나갔다. 유네스코는 1987년 이곳을 세계유산으로 선정했다.

○ 건축역사의 프리즘이 된 톨레도 대성당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충격처럼. 그 진원은 도시 곳곳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너무도 다양한 시대의 유산과 문화양식. 무데하르(기독교 통치하의 이슬람예술)와 고딕 첨탑교회, 모스크(이슬람사원)와 시나고그(유대교회), 로마네스크와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 등등.

한 골목에 들어서니 갖가지 칼과 갑옷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중세의 골목을 지나 그 끝에 다다르니 아윤타미엔토 광장이 펼쳐진다. 톨레도 대성당(카테드랄)은 거기 있다.

여기서 잠깐.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칼과 갑옷을 기억하는지. 디자인은 뉴질랜드의 갑옷장이 했지만 제작은 모두 여기 톨레도에서 이뤄졌단다. 톨레도의 금속가공 기술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라고 한다.

톨레도 대성당은 스페인 가톨릭 교회의 중심이자 권위의 상징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찾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다. 고딕부터 르네상스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의 총합체이기 때문이다. 1226년 착공돼 15세기 말미에 완성된 이런 ‘건축양식의 종합선물세트’는 흔치 않다.

대성당 앞에 서니 3개의 거대한 문이 있다. 왼쪽은 ‘지옥의 문’, 가운데는 ‘용서의 문’, 오른쪽은 ‘심판의 문’. 최후 심판의 날, 사람들은 이 문을 통해 신 앞에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 피카소의 뿌리는 천재화가 엘 그레코

성당은 겉도 화려하지만 내부는 더하다. 회화 조각 장식 등 온갖 예술이 총망라됐다.

실내의 한 채플(예배실). 예수 탄생부터 재림까지의 장면이 조각된 기둥에 눈길이 모인다.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은 감탄할 만하다. 가능하다면 오전 9시에 맞춰 이 채플에 가기를 권한다. 이 시간, 기둥 맞은편의 유리창에서 비춘 햇살에 조각 전체가 황금빛을 발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그 빛의 축제는 기둥의 조각 중에서도 예수 재림 부분이 발원지. 자세히 보니 재림예수의 발아래 빛이 퍼져나가는 모양의 조각이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대성당에서 천재화가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보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그는 17세기 그리스 크레타 섬 출신으로 ‘도메니코 테오코폴로스’라는 이름 대신 이렇게 불리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도 발음하고 기억하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엘 그레코는 ‘그리스 인’이라는 뜻. 성당에는 그레코의 작품만 모아둔 특별전시실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그레코는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불운의 예술가다. 그림을 잘못 그린다는 이유로 황궁에서 쫓겨날 정도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근법에 입각한 대상의 사실적 묘사를 중시하는 당시 화풍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딴판의 그림을 그려젖혔으니.

그가 그린 슬픔에 잠긴 예수를 보자. 목과 손은 비정상적으로 길쭉하다. 원근법이 전혀 고려돼 있지 않다. 그의 회화는 사후에도 오랫동안 미술계의 주류에서 배척됐다. 재조명 받게 된 것은 지난 세기초 독일의 표현주의가 등장하면서다.

이후 그는 미술사에서 신기원을 이룬 중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에 대한 평가는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스페인, 아니 전 세계가 사랑하는 명장 피카소의 작품 뿌리가 그레코의 회화세계였다는 말.

○ 가고 싶다면 지금 떠나라

톨레도를 여행할 때 실천하면 좋은 두 가지 사실. 하나는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차를 버리고 걷는 것이다. 톨레도에는 봐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그러니 하루 이틀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도시는 16세기 당시 모습을 지금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차량통행이 수월치 않음은 당연지사. 걷는 것이 상책이다.

삶은 곧잘 자전거 타기에 비유된다. 달리거나 방향을 틀 순 있어도 제자리에 서거나 뒤로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전거에 올라타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곧 쓰러짐을 뜻한다. 스페인을 여행하며 삶의 여유에 대해 생각했다. ‘태양의 제국’ 스페인을 찾아 일상 탈출의 기쁨에 탐닉하는 연간 4500만 명의 관광객. 그들에게서 자전거를 멈추는 대신 느릿하게 페달을 밟으며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배웠다. 우리도 잠시 다리 힘을 빼고 느긋하게 달리며 그 대열에 끼어봄이 어떨는지.

언젠가는 가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떠나기에 좋을 때란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지금’이 바로 떠날 때다. 기자의 느낌이자 ‘스페인, 너는 자유다’란 책을 펴낸 아나운서 손미나 씨의 지론이기도 하다.

톨레도=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여행정보

◇항공로=파리, 런던,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주요 공항에서 항공편 연결. ◇통화=유로. 1유로는 약 1250원.

◇관광정보 △스페인관광청=www.spain.info(영어) www.spaintour.com(일어) △스페인관광청 서울사무소 02-722-9999

◇톨레도 기온=3월 최저 8도, 최고 17도.

◇파라도스=온 나라가 박물관처럼 보이는 스페인. 덕분에 연간 4500만 명이 찾는 관광대국을 이뤘다. 그러나 고민도 많다. 옛 모습의 건축과 도시를 보존 관리하는 데 드는 막대한 예산 때문. 주인 잃은 옛 성과 궁전, 수도원, 영주와 부호의 저택 등은 더 큰 골치다. 고심 끝에 내놓은 아이디어가 국영호텔로 개조해 활용하기. 이것이 ‘파라도스’(www.paradors.com)로 전국에 80여 개가 있다.

숙박비는 1박에 100∼200유로(12만5000∼25만 원), 시설은 3, 4급 호텔 수준. 골프코스와 야외풀을 갖춘 곳도 있다. 3개월 전 예약은 필수. 예약도 힘들지만 변경은 더 까다롭다. 그래도 스페인 여행길에 꼭 체험해 보기를. 옛 스페인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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