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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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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 대신 스키니 진 차림에 한손엔 커피를 든 여성을 그리지 않았을까.
‘현대판 미인도’가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다. 현대여성의 라이프스타일과 일상의 표정을 포착한 그림이다. 패션일러스트에서 화가의 인물화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신윤복 그림의 주인공이 그네타기를 즐긴다면 현대판 미인도의 여성들은 파티와 쇼핑을 좋아한다. 이들이 입은 옷은 최신 유행을 반영한다. 때로는 이른바 ‘된장녀(사치스러운 젊은 여성을 비꼬는 말) 그림’으로 오인받기도 한다.
인기를 얻은 일부 주인공은 캐릭터로 진화한다. 문구, 신용카드, 백화점 간판, 패션 등 여성을 겨냥한 상품의 광고에 활용된다. 동양화가 육심원 씨의 그림은 다이어리와 은행통장에까지 진출했다. 패션일러스트에서 탄생한 ‘치카로카’는 액세서리 브랜드로도 만들어졌다.
마시마로 둘리 등 만화 주인공들이 장악했던 캐릭터 시장에 20, 30대 여성의 사랑을 받는 ‘현대판 미인’들이 다크호스로 등장한 셈이다.
○여성의 꿈과 욕망을 담다
‘긴 파마머리, 웃음과 불안이 섞인 커다란 눈…’.
30대 싱글 여성의 삶을 다룬 KBS 드라마 ‘달자의 봄’은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은 일러스트로 눈길을 끈다. 패션일러스트레이터 이경아 씨의 작품이다. 매회 주제를 암시하는 그림은 신비로운 색채와 캐릭터가 살아 있는 의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씨는 “드라마의 분위기와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그림 속 의상에 신경을 많이 쓴다”며 “패션에 관심 있는 여성이 늘면서 패션일러스트가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패션일러스트는 원래 디자이너의 스케치, 패션잡지에 실리는 삽화 등을 말한다. 그러나 작가의 독특한 그림체와 참신한 감각이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쓰임새가 다양해졌다.
이 씨는 “패션일러스트는 당대의 트렌드를 반영한다”며 “파워우먼이 각광을 받은 1980년대에 슈트를 입은 근육질 여성 그림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마른 체형의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인기”라고 소개했다.
2002년 이후 벌써 5번의 개인전을 연 육 씨의 그림은 21세기 미인도로 불린다. 동양화 같지 않은 화려한 색채로 평범한 여성들의 꿈과 욕망을 담아낸다. “친구들이 수다 떠는 모습과 화장하는 모습에서 착안해 그렸다”는 게 육 씨의 설명.
‘나 이뻐?’ 라는 그림 속 노랑머리 소녀는 예쁘다는 칭찬을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다. ‘신어볼까’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구두에 대한 현대 여성의 욕망을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녀의 변신, 캐릭터의 진화
육 씨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나 이뻐?’. 그림 속 소녀에게 ‘바바’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바바에게 다른 옷을 입히고, 머리 모양을 달리해 대표 캐릭터로 키우고 싶다”며 “인형과 생활소품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판 미인도의 주인공들은 캐릭터로 진화해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날씬한 몸매의 치카로카가 대표적인 사례. 고양이 같은 눈이 위로 치켜 올라간 치카로카는 삼성 케녹스 카메라의 광고 모델에 이어 음악그룹 캐스커의 뮤직비디오 주인공도 맡았다. 치카로카가 상황별로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한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배경그림은 한 달 평균 20만 개가 팔린다.
치카로카는 주얼리, 우산, 패션, 디자인문구 등 상품으로도 개발됐다. 일본과 스페인의 패션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해 올해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패션업체들은 아예 캐릭터를 광고모델로 활용하기도 한다.
엘르 스포츠는 패션일러스트레이터 이미정 씨의 작품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다. 실사보다 그림이 여성들의 욕망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해외 유명 작가들도 진출
조르디 라반다, 파피, 나라 요시모토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국내에서 잇달아 상업화에 성공하고 있다.
프랑스의 여성 일러스트 작가 파피는 올해 패션업체 두 곳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다. 아디다스와 레스포색은 동시에 파피와 제휴를 맺고 각각의 제품에 소녀 캐릭터와 상상으로 가득찬 그의 그림을 실었다.
패션일러스트로 가장 유명한 작가는 스페인의 조르디 라반다. 그의 그림이 담긴 문구류와 생활소품은 입소문을 타고 인터넷과 일부 레스토랑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최근엔 서울 중구 명동에 조르디 라반다 카페가 문을 열기도 했다.
순진한 듯하면서도 악동의 얼굴을 한 인물 표정이 일품인 일본 작가 나라 요시모토도 주목 받고 있다. 티셔츠, 생활소품, 문구류 등이 인기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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