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훌 벗은 창작 과정… “작품에 손대시오”

  • 입력 2007년 1월 15일 03시 00분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게 뭔가, 싶다. 글자가 가득한 A4 용지, 낙서에 가까운 듯한 그림, 여기저기 붙은 메모지…. 완제품만 봤던 관람객들에게 이 전시회는 낯설다. 여기는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곳이다. 팔짱 끼고 이렇다 저렇다 하던 관람객이라면 더욱 난감할 듯싶다. 이곳은 펜을 들고 평을 써줘야 한다. ‘함성호의 불만카페’전이 2월 9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테이크아웃드로잉 갤러리에서 열린다. 함성호(44) 씨는 시집 ‘56억7천만년의 고독’ ‘너무 아름다운 병’ 등을 낸 시인이자 건축가이다. 그간 단체전을 통해 조형 작품들을 선보인 그가 실험적인 첫 개인전을 열었다.》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그 전시를 본 관람객들이 적어낸 불만을 함께 보여 주는 것이다.

전시 공간에는 불만 메모가 여럿 붙어 있다.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어요’라는 하소연부터 ‘당신의 건축에도 아날로그가 담겨 있나요?’라는 시적인 물음,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된다’는 지적까지 다양하다. 전시회마다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함성호의 불만카페’는 ‘작품에 손대시오’라고 권하는 셈이다.

“마르셀 뒤샹이 작품이라면서 변기를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놀랐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작품’이 더는 충격을 주지 못할 겁니다. 저는 ‘변기를 내놓기까지의 과정’을 대중에게 보여 주고 반응과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21세기는 ‘과정의 시대’라고 선언합니다.”

전시 공간을 ‘incarnation(육화)’ ‘interference(틈입)’ 두 부분으로 나눴다. ‘육화’는 건축 과정, ‘틈입’은 시작(詩作) 과정이다. 전시작 중 한 편의 시가 나오기까지의 긴 여정을 그대로 보여 주는 ‘작품’이 시선을 끈다. 팔레스타인 난민 여성이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라며 우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울컥해서 시를 썼다. ‘울지 말아라 부서진 문짝 위에서 울고 있는 여인아’로 시작되는 이 시에 처음엔 ‘이십세기를 위한 레퀴엠’이라는 제목을 달아봤다. ‘이 꽃을 봐/ 이 죽음을’을 마지막 연으로 달았다가 없애기도 수차례 반복했다. 불필요한 단어를 빼기도, 뒤늦게 떠오른 시행을 넣기도 했다. 제목도 신파같아서 몇 번을 썼다 지웠다. 마땅한 제목을 찾기 어려워 사자(死者) 그림도 그려봤다. 그렇게 꼼꼼하게 손본 뒤에 문예지에 발표한 시의 제목은 ‘봄노래, 밤노래’. ‘나는 보았다 울고 있는 여인을/ 나는 보았다 부서진 문짝 위에서’로 시작돼 ‘오 악마에게 영혼을 팔기 좋은 밤이다’로 끝나는 작품이다. 시 쓰기를 ‘언어로 집짓기’로 여기는 함 씨에게 이런 치밀한 시작 과정은 당연한 일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카페 ‘회회재’는 함 씨가 이름부터 지어놓고 설계를 시작했다. 이름을 발음하다 보니 ‘회회 돌아가는 집’이라는 영감이 떠올라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을 그어보았고, 회전하는 듯한 모양의 건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선도, 건물 형태의 수정도 드로잉으로 전시하고 있다.

16일 오후 5시에는 함 씨가 설계한 집의 건축주들이 모여 ‘불만’을 털어놓는 ‘살아보니 이렇더라’ 모임이 열린다. “구름처럼 집을 만들고 싶어서 바닥에 유리를 대고 집을 떠 있는 것처럼 지었는데 바닥에서 물이 샌대요. 꼭 구름에서 비 내리는 것처럼. 그래서 구름집은 이제 안 짓기로 했어요, 하하.”

17일 오후 5시 반 함 씨가 설계해 현재 건축 중인 부산 인디고서원의 독서토론 모임 학생들이 전시장을 찾아 성기완 강정 시인과 함께 문화 세미나를 열며, 전시회 마지막 날인 2월 9일에는 시 낭송회와 즉흥 콘서트도 열린다. 02-540-0175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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