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에게 말 걸기…양만기 씨 개인전

  • 입력 2007년 1월 8일 03시 00분


전시작 ‘식물적 사유’. 옷걸이를 개조해 만든 나무 기둥과 모니터, 전선 등 양만기 씨가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소재는 제한이 없다. 박영대 기자
전시작 ‘식물적 사유’. 옷걸이를 개조해 만든 나무 기둥과 모니터, 전선 등 양만기 씨가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소재는 제한이 없다. 박영대 기자
■ 양만기 씨 개인전 ‘Language of the Relationship’

양만기(44·덕성여대 서양화과 교수·사진) 씨는 중견 미디어 아티스트로 손꼽힌다. 서양화에서 출발한 그는 디지털 미디어를 비롯해 컴퓨터, 영상, 애니메이션, 사운드, 평면과 입체 등으로 작품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여러 군데에서 무작위로 소재를 골라오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 페인팅’이라는 말도 듣는다.

그는 “앞으로도 표현 욕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되면 만화든 사진이든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카이스갤러리(02-511-0668)에서 24일까지 선보이는 그의 개인전 ‘Language of the Relationship’에서는 확장 일로에 있는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전시장에 가 보면 작가의 정체성이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선 ‘너무 많은 것을 한다’는 인상도 받는다.

‘테이블 파워’는 알록달록한 세 마리의 앵무새 조각이 있고 그 옆에 모니터를 설치한 작품이다. 아래에는 건반도 있다. 건반을 누르거나 사람이 다가가서 소리를 내면 모니터 화면이 바뀐다. 쌍방향이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디지털을 향한, 디지털을 통한 ‘관계’. 전시 제목처럼 관계 언어로서의 디지털인 셈이다.

발광다이오드(LED)를 사용한 대형 설치작품 ‘노이즈 제너레이션’도 인간과 디지털의 ‘관계’를 형상화했다.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의 내용이 전광판의 불빛처럼 움직인다. 작품이 워낙 크고 무거워 전시하는 데만도 며칠 걸렸다.

‘식물적 사유’라는 작품은 모니터 16개를 나뭇가지처럼 매달았다. 화면에는 시간에 따라 꽃을 촬영한 영상이 나온다. 나무가 자신의 성장 과정을 생각한다면 이런 이미지일까.

평면 작품인 ‘소셜 가든 2’도 흥미롭다. 평면에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 새싹이 하나 올라오지만 그 성장의 길을 모니터 창이 막는다. 모니터에선 ‘pollution(오염)’이나 ‘trouble(문제)’ 등 부정적 단어들이 점멸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그 너머에 다른 싹이 자라나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세상을 긍정한다.

알쏭달쏭하지만 작가는 디지털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그는 “보이는 세상만이 진실이 아니며 그 너머에 새로운 무엇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데, 디지털이 그런 깨달음을 일깨우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30대 중반인 199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에서 회화로 대상을 받아 일찍부터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는 “이후 회화에 머물지 않고 영역을 넓혀 왔지만 회화에서 익힌 전통적 미감이나 조형미 등이 아니면 컴퓨터 영상이나 설치 같은 대형 작업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아티스트임에도 작가는 정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e메일을 주고받는 일을 꺼린다. 작품에 쓰기 위해 케이블의 피복을 벗기거나, 알맞은 색깔의 나사를 찾는데 수일씩 돌아다니다 보니 실제의 삶은 자신도 모르게 디지털을 거부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런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지나쳐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되는 것. 특히 로봇 같은 하이테크는 인간의 몸을 모방하려 한 것입니다. 천재들이 머리를 싸매고 만드는 게 결국 로(low)테크인 인간과 자연이라는 사실, 이게 아이러니 아닙니까. 그 자연은 이미 있는데….”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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