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잡는 해병’ 입맛 꽉 잡았죠

  • 입력 2006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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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기능장 박순늠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경북 포항시 해병1사단 조리병들에게 재료를 아끼면서 맛을 내는 방법을 지도하고 있다. 이권효  기자
조리기능장 박순늠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경북 포항시 해병1사단 조리병들에게 재료를 아끼면서 맛을 내는 방법을 지도하고 있다. 이권효 기자
경북 포항시 해병 1사단의 부대 안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은 맛 좋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소속 장병뿐만 아니라 간혹 부대를 방문하는 외부인사들도 “군대 음식 맛이 아니다”라며 혀를 내두르는 것.

비결은 20년째 이 부대 취사병들에게 요리 지도를 하는 한 전문가의 숨은 봉사에 있다. 포항시 북구 죽도동에서 포항요리전문학원을 운영하는 박순늠(56·여) 씨가 주인공이다.

박 씨와 해병대의 인연은 1985년 겨울 시작됐다. 부대 측이 지역의 요리전문가인 박 씨에게 김장을 맛있게 담그는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던 것.

그는 배추를 골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는 방법 등 전문가로서 쌓아온 노하우를 조리병들을 대상으로 10년간 김장때마다 전수했다.

장병들이 잘 익은 김장김치 맛에 반하자 박 원장은 이후 분기별로 한 번씩 부대 식당을 찾아 평소 먹는 반찬에도 ‘손맛’을 전수하고 있다.

그는 “군대 음식을 흔히 ‘짬밥’이라며 맛이 없는 것으로 알지만 단체급식이라도 조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집에서 먹는 음식처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해병대원들은 20년 넘게 부대를 찾아 음식 맛을 보살펴 주는 박 원장을 ‘어머니 주방장’으로 부르고, 아들이 없는 그는 해병대원들을 모두 아들처럼 대한다.

특히 박 원장은 전역 후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싶어 하는 장병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1992년부터 자격증 과정을 지도하는 강습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의 지도를 받아 복무기간에 한식을 비롯해 양식, 일식, 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딴 장병은 지금까지 3000여 명에 이른다. 박 원장은 “아무리 귀신 잡는 강인한 해병대라지만 식사 시간만큼은 맛을 음미하는 즐거운 시간이 돼야 할 것”이라며 “요즘 입대하는 신세대 장병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조리병들에게 요리 지도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포항=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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