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치매 걸려도, 복잡한 절차 없이 신탁자산 치료비로 활용”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3일 00시 30분


[영올드&] 치매머니 예방 ‘유언대용신탁’
금융사와 자산 운용 계획 미리 설계… 치매 후견인 절차 없이 병원비 받아
사망 후엔 지정 수익자에게 상속… 가족 간 법적 분쟁도 줄일 수 있어

한국의 새로운 경제 주체인 ‘영올드(Young Old·젊은 노인)’의 고민 중 하나는 평생 모은 자산을 안전하게 통제하면서 가족들에게 상속하는 것이다. 운용 계획을 미리 정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로 자산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거나, 가족 간 상속 분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이 크다면 금융사를 통해 미리 자산 운용 계획을 세워 놓는 ‘유언대용신탁’을 해결 방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

● 172조 원 규모 ‘치매머니’ 대비책

유언대용신탁은 계약자가 금융사와 맺는 자산 운용 약속이다. 계약자가 자산을 금융사에 맡기면 운용에 따른 수익을 받을 수 있다. 사망 후에는 배우자나 자녀 등 구체적으로 정해둔 수익자에게 자산이 상속된다.

유언장은 자필로 작성해야 하고 직접 도장을 찍어야 하는 등 효력 발생을 위한 법적 조건이 까다롭다. 분실이나 위조의 위험도 있다. 반면 유언대용신탁은 계약을 통해 맞춤형으로 자산 운용 계획을 미리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 유언장 방식과 다르다.

특히 최근에는 유언대용신탁이 이른바 ‘치매머니’를 예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치매머니는 65세 이상 치매 노인이 보유한 금융·부동산 자산을 의미한다. 치매머니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72조 원으로 추정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국내 치매 환자가 올 146만5000명에서 2050년 396만700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증 치매 증세가 발생하면 자신의 자산을 병원비나 간병비로 활용하려 해도 돈을 인출하고 결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족 등이 절차를 대신하려면 성년후견인을 지정해야 하는데 복잡한 절차를 거쳐 법원의 결정을 받아야 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치료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유언대용신탁에 가입했다면 인지 능력이 정상일 때 미리 ‘치매나 중증 질환으로 판단력을 잃으면 자산 중 일부를 병원비와 간병비로 집행하라’고 신탁 계약서에 명시할 수 있다. 이렇게 해두면 금융사가 미리 약속된 계약 내용대로 돈을 집행한다.

계약자가 신뢰하는 가족을 신탁 운용 지시권자로 지정할 수도 있다. 지시권자는 신탁 재산의 운용 방법을 정하고 자금 집행이 올바르게 이뤄지는지 감독하는 역할을 가진다. 이를 통해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이 가진 자산으로 안정적으로 치료와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가족 간 상속 분쟁을 막는 수단

유언대용신탁은 가족 사이의 상속 분쟁을 예방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은퇴를 앞둔 한 50대 후반 남성은 최근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진행하면서 아내의 노후 생활비를 보장하면서도 자녀들에게 매달 일정한 생활비 형태로 상속하겠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담았다. 이 남성은 “자녀들에게 미리 자산을 상속했다가 나중에 홀대 받을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가족끼리 법정에서 상속 문제로 얼굴 붉힐 일을 미리 막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상속을 둘러싼 가족 간 법적 분쟁은 늘어나는 추세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법원에 접수된 상속재산분할 소송 건수는 2020년 2095건에서 2024년 3075건으로 46.8% 늘어났다. 자녀들은 주로 부모의 부양 기간, 비용 등을 이유로 더 많은 상속 지분을 요구하며 법적 분쟁에 나선다.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면 계약자가 미리 배우자와 자녀의 경제적 상황을 직접 고려해 상속 설계를 할 수 있다. 계약자의 인지 능력이 정상일 때 금융사의 상속 전문가가 세무·법률 검토를 거쳐 계약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만큼 상속재산분할 등의 법적 분쟁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계약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신탁한 부동산의 임대료를 자신의 생활비로 쓰다가 사망 후에는 배우자에게 상속되도록 하고, 만약 배우자도 사망하면 자녀에게 이를 넘겨주는 ‘연속 상속’ 설계를 할 수 있다. 민법상 유언장을 통한 상속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면 가능한 방식이다.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자녀에게는 목돈을 한꺼번에 상속하는 대신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 형태로만 지급되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스스로 자립하기 힘든 장애나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에게는 의료비와 간병비 중심으로 지급되도록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순히 상속뿐만 아니라 사회 단체나 기관에 계약자가 자산의 일부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설계하는 계약자도 있다. 기부 뒤에 남은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된다면 일부 자산은 상속인들의 생활비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설계하면 된다.

● 최소 상속 몫 ‘유류분’은 보장해야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더라도 재산의 상속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민법에 따라 배우자, 자녀, 부모의 최소 상속 몫을 보장하는 ‘유류분’은 지켜야 한다. 판례에 따르면 유류분은 유언대용신탁 계약서나 유언장보다 우선한다. 유언대용신탁으로 정해둔 내용도 유류분을 침해하면 반환 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배우자와 자녀는 법정 상속분의 절반, 부모는 3분의 1이다.

결국 유언대용신탁 계약서를 작성할 때 특정 가족에게 자산을 몰아주는 것은 어렵다. 유류분을 고려해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배분 비율을 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유언대용신탁의 절세 측면에서 특별히 유리한 점이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신탁 계약을 했더라도 상속세 자체는 감면되지 않는다. 다만 신탁을 통해 자산 평가 시점을 조절하거나 장기적인 배분 계획을 세움으로써 상속세를 한 번에 내야 하는 부담은 덜 수 있다.이정섭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신한금융그룹의 자산가 고객을 대상으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신한은행과 신한투자증권의 분야별 최고 전문가 그룹으로 투자전략(18명), 주식·섹터(21명), 투자상품(12명), 포트폴리오(15명), 외환(3명), 부동산(10명), 세무(14명), 상속·증여(4명), IB(3명) 등 총 100명의 전문위원과 수석전문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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