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크고 인조수염 따갑고…그래도 열정만큼은 주연급”

  • 입력 2006년 10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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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MBC 드라마 ‘주몽’ 촬영 현장에서 엑스트라로 분장한 남원상 기자. 뒤로 주연 송일국이 연기하는 게 보인다. 사진 제공 MBC
전남 나주시 MBC 드라마 ‘주몽’ 촬영 현장에서 엑스트라로 분장한 남원상 기자. 뒤로 주연 송일국이 연기하는 게 보인다. 사진 제공 MBC
“엑스트라도 외모 따라 역할이 달라져요.”

19일 전남 나주시 MBC ‘주몽’ 촬영장에서 만난 호위 군사 역의 보조출연자 이동호(36) 씨의 말이다. 시청자들은 주몽(송일국) 소서노(한혜진) 등 주인공들에게 시선이 가지만, 엑스트라에게도 외모가 관건이다.

‘주몽’의 보조출연자를 관리하는 백석현 단장은 “키가 크고 인상이 강한, 젊은 남자 출연자들은 주로 갑옷을 입는 군사나 호위병 역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체격이 작고 나이가 든 축은 유민이나 상인 역을 한다. 여자들도 젊고 예쁘면 시녀나 나인 역을, 살이 찐 사람이나 아줌마는 상궁과 백성 역을 한다.

여자 아이 역의 고금비(7) 양은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기쁘고 연기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40, 50대가 대부분이었지만 방학 때는 연예인을 보러온 여중고생 엑스트라가 많다고 했다.

사극은 보조출연자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이다. 지방 촬영이 많아 교통비가 많이 들고 야외촬영 때문에 더위나 추위와 싸워야 한다. 한모(58) 씨는 “잠은 찜질방에서 해결하고 촬영이 밀리면 식사를 거르기도 한다”며 “TV에 나오는 일이어서 화려할 줄 알았는데 웬만한 노역보다 힘들다”고 토로했다.

출연자 수가 충분하지 않아 장면마다 의상을 갈아입고 분장을 바꾸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정규식(57) 씨는 “아침엔 대신을, 점심엔 저잣거리 상인을, 저녁엔 군사를 연기하는 등 하루에 여섯 번씩 역할이 바뀐 적도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주몽’ 엑스트라 일일 체험에 참가해 3시간 동안 고조선 유민 역을 해 보니 쉽지 않았다. 의상은 땀 냄새가 풍겼고 신발은 커서 크기가 맞지 않아 걷기도 불편했다. 분장을 하면서 수염을 붙이는 접착제 ‘스피리트 껌’을 바르자 코끝에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고 인조털이 피부에 닿아 가려웠다. 촬영장에서는 커피 원두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를 계속 피워 눈과 목이 따가웠다. 그래도 감독이 “액션!”이라고 외치면 너나 할 것 없이 울고 소리지르며 연기에 몰입하는 보조출연자들의 열정이 놀라웠다.

보조출연 경력 6년째인 강영희 씨는 “송일국과 한혜진이 드라마의 꽃이라면 우리는 줄기”라며 “비록 드러나진 않지만 시청률 1위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나주=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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