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정채원 ‘요요놀이’

  • 입력 2006년 10월 20일 03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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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놀이 - 정채원

지하철 승강장에서 아이들 요요를 던지며 놀고요 손바닥에 움켜쥐었다가 멀리 던지고 던졌다간 다시 받아 움켜쥐고요 초록빛 치마를 입은 계집아이 손에서 투명한 수정빛 요요가 던져지고요 무인년 축에 한 쪽 끝을 잡아맨 채 갑자년으로 달아나고요 애기똥풀꽃 사이로 달아나는 잠자리를 좇고요 열차가 곧 도착합니 사내아이는 짓궂게 자꾸 뒤쫓아오고요 이번 열차는 당산 당산행입니 당산나무 아래 초록빛 개울이 흐르고요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넓으니 발을 조심하시 개울을 훌쩍 건너뛰려던 계집아이는 그만 개울물 속으로 풍덩 온몸에 초록물이 들고요 어쩌나 어쩌나 문이 열리고 초록물이 든 내가 훌쩍 열차에 올라타고요 먼 옛날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들도 함께 올라타고요 비좁은 차칸세상 앞사람과 뒷사람 사이에서 추억은 꼼짝도 못 하고요 맥 못 추며 무인년 주머니 속으로 쑥 들어가 숨고요 손잡이의 진폭만큼 짧아진 꿈에 매달려 흔들흔들 왔다갔다 요요세상

- 시집 '나의 키로 건너는 강'(시와시학사) 중에서

그러고 보니 세상은 온통 신나는 요요놀이가 아닌가. 차르르, 여름 높이 던진 해가 겨울로 되돌아오고 보름으로 치솟던 달이 그믐으로 감기는 사이, 강물은 서리서리 바다로 감겼다 뭉게뭉게 구름으로 풀려난다. 모든 꽃잎들은 하르르 풀려났다 주르르 열매로 되감기고, 모든 열매들은 후두둑 떨어졌다 파릇파릇 되돋는다. 훌쩍 '열차와 승강장 사이' 건너뛰면 우리 모두 '비좁은 차칸세상', '앞사람과 뒷사람 사이' 내 분홍옷에 네 초록물 들고 네 초록옷에 내 분홍물 드는 사이, 내 눈물에 네 웃음 젖고 네 웃음에 내 눈물 마르는 사이, 한 생이 감기고 또 한 생이 열린다. 천만 번 새로운 요요 또는 윤회.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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