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생텍쥐페리의 전설적인 사랑

  • 입력 2006년 9월 16일 03시 00분


프랑스 니스 근처의 별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생텍쥐페리와 아내 콘수엘로. 수없이 다투고 홧김에 서로를 떠나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사랑했다. 사진 제공 이미지박스
프랑스 니스 근처의 별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생텍쥐페리와 아내 콘수엘로. 수없이 다투고 홧김에 서로를 떠나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사랑했다. 사진 제공 이미지박스
생텍쥐페리가 콘수엘로에게 쓴 편지 여백에 그린 그림.
생텍쥐페리가 콘수엘로에게 쓴 편지 여백에 그린 그림.
◇생텍쥐페리의 전설적인 사랑/알랭 비르콩들레 지음·이희정 옮김/200쪽·1만1000원·이미지박스

결혼식 때 울었던 사람은 신랑이었다. 어머니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아서였다. 함께 선 신부를 보면 어머니 마음도 이해할 만했다. 전남편의 상중이라 신부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남자에게는 첫 아내였지만 여자에게는 세 번째 남편이었다.

신랑의 이름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 직업은 비행기 조종사, 후에 유명한 고전 ‘어린 왕자’를 쓰게 될 작가다. ‘어린 왕자’를 사로잡았던 ‘장미’는 엘살바도르 출신의 매력적인 여인, 콘수엘로 순신 산도발(1903∼1979)이었다.

‘생텍쥐페리의 전설적인 사랑’은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의 사랑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다소 촌스러운 제목이지만 원제도 그렇다). 생텍쥐페리에게 아내가 있었고, 독특한 방식이긴 했지만 평생을 사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작가의 가족이 콘수엘로를 못마땅해했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의 비서가 커다란 여행가방을 공개해 부부의 사랑이 세상에 알려졌다. 수십 년 동안 콘수엘로가 한 번도 열지 않은 이 가방에는 편지와 쪽지, 그림이 그려진 스케치북, 수채화, 시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 책은 그 가방 속 자료들을 모아 만든 것이다.

20대에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자마자 사교계의 꽃으로 유명해진 콘수엘로는 두 번째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직후에도 매일 저녁 파티에 초대받았다. 대단히 아름다운 데다 말솜씨도 뛰어났고 예술적인 감각도 탁월했던 이 여성을 파티에서 만난 생텍쥐페리는 한눈에 반한다.

몇 권의 소설로 문명을 얻었던 그는 콘수엘로를 만나자마자 비행기에 태우고 손을 잡으면서 “이 손을 영원히 내게 주세요”라며 청혼했다. 마마보이여서, 반대하던 어머니가 결혼식에 오지 않자 눈물을 펑펑 쏟았지만 그래도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다.

여기까지는 낭만이다. 결혼식을 올린 뒤 현실은 시작된다. 몇 달은 행복했지만, 조종사 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이 많지 않았던 터라 금전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콘수엘로를 괴롭힌 것은 남편의 여자였다. 생텍쥐페리는 부유하고 지적인 여성사업가 넬리 드 보귀에와 연인으로 지냈다(넬리는 훗날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생텍쥐페리 전기를 낸다. 여기서 생텍쥐페리가 콘수엘로와 결혼했다는 내용은 단 세 줄만 나온다).

넬리와의 관계를 알고 콘수엘로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것처럼 남편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아내를 두고 남편은 떠났다 돌아오고 또 떠나기를 반복했다. 콘수엘로는 남편에게 애원도 했고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콘수엘로, 내 아내가 되어줘서 고마워. 나는 돌아갈 사람이 있고 영원히 기다릴 사람이 있는 거잖아.” 생텍쥐페리가 아내에게 보낸 많은 편지 중 하나는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지 잘 보여 준다. 1942년 작가가 미국 뉴욕에 자리 잡고 ‘어린 왕자’를 쓸 때 아내는 남편을 내조했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장미’라고 불렀다.

“고집스러운 게처럼 날 꽉 잡고 있어 줘서 고마워.”

2차대전 말기 군용기를 타고 전쟁터에 가기 전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비행 중 실종된 남편을 30년 동안 그리면서 살아갔다. 시댁 식구들의 힐난과 불안정했던 부부관계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이 이어져 콘수엘로는 생애 내내 외로웠던 게 사실이다. ‘어린 왕자’와 ‘장미’가 나눴던 사랑의 진실은 콘수엘로가 조용히 간직했던 많은 자료가 그의 사후에 공개돼서야 밝혀졌다.

편집을 산만하게 느낄 독자도 있겠다. 이야기 중간중간 편지 문구와 사진들, 작가가 그린 그림과 관련 신문기사들이 삽입됐다. 자료가 풍성해 흥미를 돋우긴 하지만 물 흐르듯 읽기란 수월치 않다. 이 책은 ‘어린 왕자’ 출간 60주년을 기념해 세계 11개국에서 동시에 나왔으며, 모든 언어권에서 똑같은 체제로 발간됐다. 원제 ‘Antoine et Consuelo De Saint-Exupery. Un Amour de L´egende’(2006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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