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한기호]‘청록집’ 재출간을 반기며

  • 입력 2006년 7월 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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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3인의 합동 시집 ‘청록집’(을유문화사)이 갑년을 맞이해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다. 이번 책은 초간본과 현행 맞춤법에 맞춰 고친 새 판본을 합본해 만들었다. 초간본을 실은 부분은 원래의 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들도록 글자 한 자 고치지 않았으며 종이도 60년 전의 것과 같은 지질을 사용했다.

‘정본 윤동주 전집’(문학과지성사), ‘김상옥 시 전집’(창비) 등 작고한 시인들의 시를 정리해 책으로 펴내는 작업은 속된 말로 장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문학의 기반을 다지려는 출판사의 노고만을 엿볼 수 있는 작업이기 십상이다.

그런데 ‘청록집’의 초기 반응이 의외로 괜찮다. 별다른 마케팅을 전개하지 않았음에도 초판 4000부가 1주일 만에 다 팔려 나가 벌써 2쇄 3000부를 추가로 발행했다는 소식이다. 시집이 초판 1000∼2000부도 팔리지 않아 ‘시의 죽음’마저 논의되는 작금의 분위기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청록집’은 일제강점기 이래 이 땅의 중요한 문학적 자산이 그랬던 것처럼 ‘골방문화’의 소산이다. 이 시집이 출현했던 해방공간에서는 문학적 입장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세상을 변혁하려는 의지가 분출했다. 내면의 침잠과 울림을 잔잔하게 보여 주고자 하는 세 시인의 진정한 마음이 청록집을 우리 서정시의 한 ‘정점’에 올라설 수 있게 한 것이다.

1960년 이후 우리 현대사는 ‘광장의 문화’였다. 먼저 광장은 지배자의 것이었다. 지배자는 광장을 독점하며 충성스러운 시민을 키우는 데만 몰두했다. 그에 대항해 대중은 끊임없이 광장을 군사독재의 퇴진과 민주주의를 절규하는 용광로로 만들려고 했다.

‘6월 항쟁’으로 민주화라는 목적이 일정한 성취를 이룬 다음, 광장은 2002년 월드컵 축구 시절 축제의 마당이 됐다. 그곳에서는 더는 ‘분노’와 ‘적개심’과 ‘한숨’을 볼 수 없었다. 이웃과 더불어 기원하는 ‘희망’만이 분출했다. 6월 4년 만에 다시 찾아온 월드컵 축구는 우리를 광장의 축제에 다시 한 번 빠져들게 했다.

하지만 축제의 광장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면의 침잠을 통한 울림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광장은 언제나 일시적인 모래성처럼 바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록집’과 같은 책을 새롭게 펴내는 것은 개인 또는 소수가 이뤄 내는 골방문화의 진수를 갈구하는 대중의 잠재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일이기에 그 의의가 적지 않다 할 것이다.

나아가 진정한 골방문화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손에 손을 맞잡는 ‘지구촌’시대가 가고 골방이 ‘시장’과 ‘도서관’과 ‘사교클럽’ 등 전방위적 역할을 하는 ‘지구방’으로 바뀐 지 이미 오래지 않은가? 이제 세상은 개인에게 ‘지구방’에서 홀로 분투하며 감동의 콘텐츠를 생산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문화는 양과 속도를 주로 추구해 왔다. 디지털 문화가 발달할수록 책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제 정설이다. 그래서 책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좌표를 찾아야 했다.

어쨌든 ‘청록집’의 반응에서 나는 미세하나마 그런 가능성을 읽었다. 비록 육필 원고에서 우러나오는 감동까지는 아닐지언정 60년 전에 저자들이 골방에서 애써 풍기려 했던 ‘냄새’를 행간과 여백에서 맡을 수 있다. 이처럼 앞으로 책은 정보의 ‘맛’을 느끼고 싶고 ‘물건’으로서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청록집’에 대한 특별한 반응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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