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를 기억하며…6월 6, 7일 ‘유재하음악대회’ 기금마련 콘서트

  • 입력 2006년 5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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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네 남자는 서울의 한 술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문득 그가 생각났다. 세 사람은 그와 함께 보낸 20대를, 한 사람은 그의 음악을 듣고 뮤지션의 꿈을 키웠던 유년 시절을 떠올렸다. 그와 나눠 마신 소주 한 잔, 귀에 맴도는 그의 노래 한 자락까지도 그들에겐 아름다운 기억이었다. 오늘도 낡은 LP반으로 ‘지난날’을 들으며 혹시라도 그로부터 ‘우울한 편지’나 오지 않을까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는 네 남자. 유재하에 대한 지독한 기억 때문이었다.

2006년 6월. 유재하의 음악 동료이자 두 살 위 형인 피아니스트 김광민, ‘정원영 밴드’의 정원영, 한양대 작곡과 4년 선배인 MBC 한봉근 PD, 그리고 1992년 제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토이’의 유희열 등 네 남자는 합동공연 ‘아름다운 기억’을 마련했다. 1989년부터 2004년까지 16년간 진행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지난해 자금 문제로 열리지 못하자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는 콘서트다. 이번 콘서트에는 유재하를 존경해온 후배 가수 박정현(6일)과 록 밴드 ‘자우림’(7일)도 게스트로 참여할 예정이다.

6, 7일 오후 7시 반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콘서트 준비로 여념이 없는 이들에게서 ‘유재하와의 기억’을 들었다.

▽정원영=“재하는 제 초등학교 중학교 2년 후배예요. 늘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나랑같이 비틀스, 퀸 같은 밴드를 얘기했죠. 재하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내가 축제 때 놀러가서 걔는 기타 치고 전 피아노 연주하고 놀았죠.”

▽김광민=“그 녀석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은 술이에요. 언젠가 방배동에서 오후 5시부터 술을 마셨는데 사람들이 막 들어와서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죠. 그래서 가야겠다 싶었는데 좀 있다가 보니 낮 12시였죠. 이건 너무 심하다 싶어 그냥 도망갔었답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았던 이들 1987년 11월 1일 유재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미국 유학 중이던 김광민은 울음을 삭이며 추모 연주곡 ‘지구에서 온 편지’를 만들었다. 함께 1집 음반을 만들었던 한봉근 PD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는데…”라며 한동안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수많은 후배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있다.

▽유희열=“전 유재하 씨 음악 들으면서 제 진로를 음대로 결정했답니다. 그는 제게 늘 영감을 주는 존재였죠. 지금은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제2의 유재하’를 꿈꾸는 실력 있는 후배들을 보며 자극을 받죠.”

1989년부터 열렸던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조규찬(1회 대상), 고찬용(2회), 유희열(4회), 이한철(4회) 등의 실력파 뮤지션을 배출했다. 그러나 유재하의 아버지(1989년 작고)가 기탁한 돈으로 마련된 이 대회는 기금 고갈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지난해 대회는 열지 못했다.

▽한봉근=“재하의 데뷔 음반이 여태껏 100만 장 넘게 팔렸다고 하지만 수익금은 고스란히 공중에서 사라졌어요. 사기꾼들만 죽은 재하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니…. 내년이면 재하가 떠난 지 20년인데 재조명이고 뭐고 생각이 없어요.”

▽정=“재하의 음악이 사후 20년이 되도록 인정받는 이유는 단 하나. 트로트, 댄스 일색이었던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그가 한국 최초로 팝 앨범을 만들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김=“재하 때문에 가요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간 셈이죠. 하지만 요새는 재하 같은 아름다운 감성을 가진 싱어송라이터는 나오지 않고…. 젊은 가수는 자꾸 ‘연예인’이 되려 애쓰니….”

공연 첫날인 6월 6일은 유재하의 생일이다. “참 신기하네요. 일부러 맞춘 것도 아닌데…”라며 한 PD는 말끝을 흐렸다.

그는 아직도 살아 있나보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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