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귀차니스트의 두가지 사랑법… 영화 ‘언러브드’

  • 입력 2006년 5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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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만족의 미학을 통해 삶의 본질을 찾는 여자이야기 ‘언러브드’. 사진 제공 필름포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만족의 미학을 통해 삶의 본질을 찾는 여자이야기 ‘언러브드’. 사진 제공 필름포럼
《‘행복은 만족에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말은 따지고 보면, 반(反)자본주의적이다. 만족한다는 것은 ‘멈춘다는 것’이고 그것은 성장이 지상과제인 자본주의적 상상력과 배치된다. ‘만족하는 삶’은 현실에는 없다. 현실은 불만족한 일들의 덩어리다. 현실에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쫓는 것, 그 판타지를 ‘만족의 미학’이라는 주제로 만든, 이색적인 영화가 개봉된다.》

일본 감독 만다 구니토시의 영화 ‘언러브드(Unloved)’의 여주인공 미쓰코는 삶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그러므로 행복하다. 승진이 싫어 시험조차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많은 걸 가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삶은 빠듯하다. 시청의 말단 공무원이며 좁은 원룸에서 살고 서른이 넘었으나 남자 친구도 없다.

이런 그녀에게 잘 나가는 벤처사업가이자 이혼남 에이지가 다가온다. 업무상 시청을 방문하던 에이지는 미쓰코의 완벽한 서류 작성 능력에 감탄하고 이내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다.

부자인 그는 미쓰코에게 호감을 갖고 이윽고 사랑하게 된다. 비싼 옷을 선물하고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사주며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여행길에서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미쓰코는 에이지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유는? 변화가 싫었기 때문이다. 에이지의 부와 명성은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 나의 삶과 그의 삶의 차이는 우열이 아니라 다만 다를 뿐이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자신과는 다른 삶에 편입되는 것이 싫다는 것이 미쓰코의 생각이었다.

단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富)를 거부하는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는 현대인의 시선에서 보면, 아웃사이더적 인간형이다. 실제로 영화 속 미쓰코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철저히 혼자다. 주변 사람들은 “왜 더 나은 삶을 향해 욕심내지 않느냐”고 다그친다. 그럴 때마다 미쓰코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내게 레테르를 붙이고 싶다면 맘대로 해도 좋아요. 하지만 전 지금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

감독은 결핍을 채우려는 갈망과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가 낳은 분노로 가득 차 있는 현대 사회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매력적인 일인지 보여 준다. ‘지금의 나’에 만족하는 것은 ‘왕따’나 타인과의 단절을 감수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지만, 행복이나 내면의 평안은 그런 대가를 치를 때 온다는 것을 전해 준다.

남들이 뭐라 하건 말건, 자신을 사랑했던 애인이 상처를 입든 말든, 자기의 길을 조용히 가겠다는 미쓰코의 캐릭터는 나약하거나 도발적인 여성상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이 시대의 새로운 여성 캐릭터다. 물론 미쓰코라는 인물은 오랜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사회에서 ‘아무리 해 봐야 나아지는 것은 없다’는 깨달음의 산물로 볼 수도 있지만.

미쓰코의 삶은 초반에는 거부당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파장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새로운 소통의 방식으로 제시된다. 늘 남의 취향, 남의 시선, 남의 기준에 휩싸여 행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두 번째 남자 친구 시모카와가 마침내 그녀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너를 선택한다”고 말하면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에서 따 왔다는 제목 ‘언러브드’를 번역하면 ‘사랑받지 못한 자’가 될까. 자기애에 몰두해 있는 미쓰코를 은유한 것이다. 24일 서울 필름포럼에서 개봉된다. 15세 이상.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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