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인천구단 휴먼스토리‘공포의 외룡구단’ 다큐영화로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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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축구에 돌풍을 일으킨 장외룡 감독(오른쪽)과 인천 유나이티드 이야기가 영화로 나온다. 제작진이 12일 훈련 중인 장 감독과 인천 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인천=이훈구  기자
한국 프로축구에 돌풍을 일으킨 장외룡 감독(오른쪽)과 인천 유나이티드 이야기가 영화로 나온다. 제작진이 12일 훈련 중인 장 감독과 인천 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인천=이훈구 기자
#장면 1/국가대표 한 명 없는 시민구단 정규리그 1위

국가대표 한 명 없는 시민 구단. 예전 팀에서 방출되고 여러 팀을 전전하던 선수들. 훈련장 하나 없어 경기도, 강원도를 떠돌던 훈련 생활.

2005년 전기리그 시작 전 언론은 인천 유나이티드를 리그 최하위로 예상했다.

하지만 장외룡 감독은 선수들에게 ‘전기 7승 3무 2패, 플레이오프 진출’을 장담하고 라커룸 화이트보드 위에 숫자들을 적어놓았다. 선수들도 처음에는 감독의 허세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장 감독은 밤잠을 안 자고 인천과 상대팀의 경기 내용을 분석했고 이를 테이프로 만들어 보여 주며 선수들 하나하나에게 목표를 정해줬다. 차츰 선수들도 자신감을 되찾아 갔다.

전기리그 성적은 감독의 목표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장 감독은 후기리그 시작과 함께 ‘6승 3무 3패’라는 또 다른 공약을 내세웠고 신기하게도 정확하게 그 성적으로 인천은 리그를 마치고 전후기 통합 1위를 차지했다.

#장면 2/몰래 빵-음료수 보내준 보이지 않는 후원자들

언제부턴가 인천 서포터스들이 원정 응원을 가면 누군가가 빵과 음료수를 보내왔다. 서포터스 수에 맞춰 음식물을 보내는 것을 보면 그중 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한데 구단 직원들이 찾아나서도 ‘보이지 않는 후원자’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성남과의 원정경기 때 아무 연고가 없는 서울 서문여고 2학년 13반 학생들이 단체 응원을 왔다. 후원자는 바로 이 반의 담임이었던 배석일 선생님이었다.

인천의 열혈 팬인 배 씨는 “일등과 최고만이 인정받는 사회이지만 모두가 소중하고 돈보다는 꺾이지 않는 강인한 정신이 먼저라는 것을 인천은 가르쳐 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는 반에 ‘인유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내는 영어 쪽지시험에는 엉뚱한 문제들이 있었다. ‘최근 경기 도움을 한 인천 선수는?’ ‘장외룡 감독은 몇 년 생?’ ‘서동원의 백넘버는?’ 등이다.

#장면 3/장외룡 감독-임중용 주장의 ‘휴먼 리더십’

지난해 11월 울산과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이천수의 슈팅이 임중용의 얼굴에 맞고 골문으로 들어갔다. 임의 탈퇴 선수로 갈 곳이 없어 떠돌다 인천에 합류한 임중용은 팀 주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과 계속되는 경기로 피로가 누적돼 급기야 병원에 실려 갔고 ‘간해독 기능 저하로 인한 일시적 시력저하’ 판정을 받았던 상태였다.

하지만 그를 대체할 선수는 없었고 임중용은 기필코 출전하겠다고 주장했다.

팀의 사기를 고려하고 상대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이 사실은 마지막까지 비밀에 부쳐졌다. 장 감독과 팀 닥터도 눈물을 머금고 그를 출전시켰다. 임중용은 나중에 “느낌은 오는데 공이 정확히 보이지 않아 얼굴을 맞았다”고 말했다.

#11명 제작진 24시간 밀착 취재… 6월 개봉

주연 장외룡 감독, 조연 인천 선수와 프런트, 서포터스.

한국 최초의 축구 다큐멘터리이자 한국 최초의 상업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온다.

‘공포의 외룡구단’(가제)은 한국프로축구에 돌풍을 불어넣은 인천 유나이티드를 배경으로 한 실화 휴먼드라마. 임유철 감독 등 11명의 제작팀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선수단을 쫓아 밀착 취재했다. 당초 방송 다큐멘터리용으로 취재하던 제작사 튜브픽처스 제작팀은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인 이 축구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방향을 바꿨다. 라커룸의 작전회의, 선수단 숙소, 전지훈련장, 서포터스, 감독과 선수의 가족들도 영상에 담았다.

현재 90% 촬영이 끝났고 6월 독일 월드컵에 맞춰 개봉한다.

인천=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장외룡감독 “나 죽으면 센터서클에 뼛가루 뿌려주오”▼

“장 감독님은 정말 축구밖에 모르세요. 돌아가시면 뼛가루를 센터서클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면서요. ‘축구라는 종교의 성직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허허. 영화를 찍다 보니 축구감독도 무대 위의 피에로라는 생각이 들어. 축구장을 찾아온 많은 팬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게 임무지.”

주연배우 장외룡 감독과 영화 연출을 맡은 임유철 감독이 12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 감독실에서 마주 앉았다.

장 감독은 “한국 프로축구가 침체돼 있는데 임 감독이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에 정말 고마웠어요”라고 말했다.

임 감독은 “인천 축구는 ‘사회의 축소판’이더라고요.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아픔과 좌절, 그리고 희망 그 모든 것이 담겨 있었어요. 인천 팀에는 유난히 부산 대우 출신이 많아요. 안종복 단장, 장 감독님, 임중용 김학철 등 모두 대우에 있다가 외환위기 이후 시련을 당했죠. 인천 축구를 통해 무한 경쟁 속에서 좌절하고 고통 받는 소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임 감독은 “장 감독을 ‘아래로 흐르는 리더십’을 가졌다”고 평했다. 훈련장에서는 직접 공을 주우러 다니고 경기장에서는 아무리 흥분해도 선수들에게 욕을 하지 않는다고.

“축구의 90%는 실수로 이뤄졌다”며 좌절한 선수들을 격려한다.

장 감독은 영화와 함께 지난해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했던 ‘축구일지’도 책으로 묶어 공개할 예정이다. 약체로 평가받던 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살아 있는 기록이다.

인천=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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