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esign]LG전자 심재진 상무-홍익대 장동련 교수의 대담

  • 입력 2006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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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한국 사회에 이만큼 가까이 다가온 적이 없었다.

최근 기업의 ‘디자인 경영’이 화두로 자리잡았고 디자인을 패션이나 외관 포장 정도로 여겼던 이들도일상의 다양한 ‘디자인 현상’에 눈을 뜨고 있다.

LG전자 심재진(51) 디자인경영센터 상무와 홍익대 장동련(50) 시각디자인과 교수가 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한국 디자인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대담을 나눴다.

심 상무는 홍익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줄곧 같은 분야에서 활동한 디자이너다.

1978년 금성사에 입사해 LG전자 유럽디자인센터 법인장과 디자인센터 전략운영팀장을 지냈고 지난해 ‘세계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ICSID)’ 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뽑혔다.

장 교수는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학교를 나와 브랜드 컨설팅 회사 ‘인피니트’ 디자인 담당이사, ‘인터 브랜드’ 대표를 지낸 뒤 학계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말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세계그래픽디자인협의회(ICOGRADA)’ 회장으로 선출돼 2007년부터 2년간 국제 무대에서 활동한다.

대담 진행은 본보 디자인섹션의 허엽 팀장이 맡았다.》

―장 교수님께 뒤늦게 축하드립니다. ICOGRADA 회장에 선출된 것은 한국 디자인 역량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일 텐데요.

한국 디자인 경쟁력이 국가 브랜드 제고와 문화 마케팅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LG전자의 심재진 상무(왼쪽)와 홍익대 장동련 교수. 변영욱 기자

▽장동련 교수=제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단체는 정보 그래픽 등 시각디자이너와 관련 단체들의 모임인데 회장국이라는 의미는 해당 디자이너들의 위상이 함께 높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그래픽디자인 역량은 인터넷 문화와 환경에 힘입어 세계 정상의 수준을 인정받습니다. 산업디자인 분야도 심 상무님이 근무하시는 LG전자를 비롯해 삼성전자가 해외의 권위 있는 상을 휩쓸고 있고요.

▽심재진 상무=저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ICOGRADA는 ICSID, 국제실내건축가연맹(IFI)과 함께 세계 디자인계를 대표하는 3대 단체입니다. ‘디자인계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저도 ICSID 집행위원 선출 투표에서 9명 중 3등을 했어요. LG라는 브랜드의 힘이 컸습니다. LG라면 국제 디자인 무대에서도 쉽게 통합니다.(웃음)

―심 상무님이 ICSID의 회장으로 활동할 날도 머지않은 듯 합니다. 이 같은 국제 무대의 성과와 달리 한국의 디자인은 국내에서 저평가된 듯합니다. 정부의 정책은 어떤지요.

▽장=홍익대는 지난 3년간 대학 특성화 사업의 하나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외국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지원이 적은 편이 아닙니다. 지원 만을 놓고 본다면 오히려 모범 국가에 속합니다.

▽심=발전을 위해 비판적으로 접근한다면, 지원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업과 예산 지원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게 아쉽습니다. 유럽에서는 단순히 행사 지원이 아니라 디자인이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낚시 도구를 주고 고기 낚는 요령을 알려 줘야 합니다.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장=많이 나아졌으나 아직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능 중심에서 이제는 콘텐츠, 문화 중심의 시대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이에 걸맞은 평가가 나올 것으로 봅니다.

▽심=한국인의 패션 감각은 대단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모습에만 관심을 두다가 눈높이가 높아지면 주변의 (못생긴) 것들을 못 참습니다. ‘비(非) 디자인’의 꼴을 참지 못하는 것이죠. 지금 한국인들의 감각이 이 수준입니다. 이에 맞추지 못하는 디자인은 도태될 것입니다

―세계 디자인 강국들을 보면 디자인은 산업인 동시에 오랜 전통과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디자인 정책이 산업 쪽으로 치우쳤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심=상품이 아니라 문화를 마케팅할 때가 왔다는데 동의합니다. 외국에 가보면 LG를 일본 제품으로 아는 이들도 있습니다. ‘좋은 것은 일제’라고 각인된 국가 브랜드의 힘이죠. 이젠 LG와 삼성을 ‘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와 연계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상품과 기업과 국가 브랜드의 보폭을 맞춰야 하는 것이죠. 지금은 문화나 국가 브랜드보다 상품이 많이 앞서 가는 실정입니다.

▽장=수출이나 브랜드 육성도 필요하지만 문화는 디자이너가 추구해야 할 최종 성과입니다. 무엇보다 디자인 콘텐츠의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유럽처럼 우리의 디자인 기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한류의 확산 과정에서 보듯, 한국의 국가 브랜드는 대기업의 상품이 간 길을 따라 가는 듯합니다. 이제부턴 디자인을 통해 한국의 정체성을 알려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장=시각 디자인 분야는 인터넷 등 뉴미디어 덕분에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글로벌 기업의 실험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뉴미디어 자산을 충분히 활용하면 한국의 정체성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난해 12월 ‘디자인 2005 코리아’ 행사에 세계 기업과 디자인 종사자들이 대거 방문했습니다. 이 행사를 활용해 ‘디자인 패키지 투어’ 등 관광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년 6월 영국에서 열리는 ‘디자인 위크’에는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 영국 디자인을 ‘맛보고’ 갑니다.

―디자인의 일상화, 즉 사람들이 매일 좋은 디자인을 체험하고 느끼는 게 관건입니다.

▽장=소득이 늘면 관심 분야도 달라집니다.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만 따지다 음식과 영화 등 문화로, 다시 모양새(꼴) 곧 디자인으로 관심사가 옮겨갑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심=4월 이탈리아 밀라노는 가구쇼 때문에 호텔을 예약할 수 없습니다. 세계인들이 축구 경기를 기다리듯 디자인 축제를 기다립니다. 그만큼 디자인이 일상화돼 있는 것이죠. 우리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디자인 축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잘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물건만 파는 나라’가 됩니다.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공공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이 분야는 어떻습니까. 공공디자인이야말로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작업인데요.

▽심=국제행사에서 일본 대표가 청계천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청계천 프로젝트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획기적인 작업이라며 칭찬을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는 이를 계기로 공공디자인 담론을 이어가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이런 점에서 공공디자인 영역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장=디자인 선진국의 사례로 볼 때 공공디자인은 국가 디자인 역량의 총합입니다. 우리는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 못한 실정입니다. 앞으로 도시와 국가 차원의 통합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야 합니다.

―국내 디자인 인력이 매년 3만7000명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한 아들의 취직을 부탁한다”는 독자의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심=국내 경쟁이 치열할수록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봅니다. 국내에서 치열한 시청률 경쟁에서 이긴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금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한국의 디자인을 배우러 옵니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진출하는 한국의 디자이너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 인력이 많다고 할 게 아니라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와 투자를 확충해야 합니다.

▽장=지금과 같은 성장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기업이 주도하는 산업디자인 분야는 성장했습니다만 다른 분야는 개척할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앞으로는 디자인 산업을 이끌 수 있는 ‘디자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스타 디자이너를 통해 디자인 위상을 높이고 시장을 확대시킬 수 있습니다.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은 국내 디자인계의 기회라고 합니다.

▽장=한국의 디지털 문화 역량을 감안하면 중국은 큰 시장입니다. 두 나라는 비슷한 감성을 갖고 있으므로 ‘디자인의 현지화’에 성공한다면 큰 성과를 거둘 것입니다.

▽심=기회이면서 위기이기도 합니다. 20년 전 일본에서 공부할 때 “‘심상’(심 상무)이 (디자인을) 배워가면 나중에 우리가 위험하다”고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습니다. 부메랑 효과죠. 중국은 물론 인도도 문화적 저력이 엄청납니다. ‘지금은 너희들에게 배우지만 두고 봐라’는 게 이들의 속마음입니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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