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두번째 추기경 탄생]홀어머니 기도가 하늘을 울렸다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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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감사… 감사”1970년에 최연소(39세)로 주교품을 받은 후 어머니 이복순(루시아) 씨와 함께한 정진석 추기경. 정 추기경의 어머니는 아들의 주교 서품 소식을 듣자 “감사, 감사, 감사” 세 마디를 하고는 기절했다고 한다. 사진 제공 천주교 서울대교구
“감사… 감사… 감사”
1970년에 최연소(39세)로 주교품을 받은 후 어머니 이복순(루시아) 씨와 함께한 정진석 추기경. 정 추기경의 어머니는 아들의 주교 서품 소식을 듣자 “감사, 감사, 감사” 세 마디를 하고는 기절했다고 한다. 사진 제공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일한 혈육인 외아들을 교회에 바친 홀어머니의 극진한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켰다. 정진석 신임 추기경의 어머니 이복순 씨는 1996년 87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하루도 성체조배(성체 앞에서 바치는 기도)를 거르지 않고 외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이 씨가 생전에 ‘아들’이라고 부를 만큼 가까웠던 충북 음성군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는 22일 본보 기자에게 “정 추기경의 어머니는 아들이 주교가 되는 태몽을 꿨고, 돌아가시기 1년 전에도 나에게 ‘아들 주교가 추기경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간곡한 기도가 이제 응답을 받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이 씨의 묘소는 유언에 따라 꽃동네 성모상 앞에 마련돼 있다. 오 신부는 “6월 6일 기일이 되면 정 추기경이 묘소를 찾아 마치 살아계신 이에게 말하듯 ‘이런저런 중요한 일이 있는데 어머니가 기도해 달라’고 간곡하게 말하곤 한다”면서 “그 같은 효심이 정 추기경이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밑거름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영상]정진석 대주교, 두번째 한국 추기경 서임

화보보기 : 정진석 대주교의 삶

정 추기경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4대째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다. 이 씨는 20세에 명동성당에서 당시 역관이었던 정 추기경의 아버지와 결혼했으며 22세 때 정 추기경을 임신했다. 이 씨는 주교의 관을 쓰고 지팡이를 든 잘생긴 청년이 “어머니, 저 주교 됐어요” 하고 말하는 태몽을 꾼 뒤 ‘큰일을 할 아이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날마다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 씨는 정 추기경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하고 복사(服事·신부 옆에서 미사 진행을 돕는 소년)를 하도록 하면서 독실한 신앙인으로 키웠다. 오 신부는 “정 추기경이 계성보통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가 사준 연필과 공책을 늘 가난한 아이들에게 줘버리고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의 아버지가 역관으로 일본에 간 뒤 소식이 끊기자 이 씨는 홀로 외아들을 키웠다. 홀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사제가 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정 추기경은 6·25전쟁 때 생사가 엇갈리는 체험을 한 뒤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고 1961년 사제품을 받으면서 어머니의 품을 영영 떠났다.

유일한 혈육인 외아들이 사제가 되어 로마 서울 청주를 돌아다니는 동안 이 씨는 인천에서 혼자 살면서 가난한 이들을 돌봤고,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가톨릭 연령회원으로 일했다. 오 신부는 “정 추기경의 어머니는 바느질품을 팔지언정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꿋꿋하게 사셨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이 1970년 최연소 주교가 돼 서품식을 올릴 때 주교의 관을 쓰고 지팡이를 든 정 추기경의 모습이 태몽과 너무 똑같아 이 씨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고 한다. 정신을 차린 이 씨가 아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사적인 부탁은 주교관을 쓰고 지팡이를 든 사진 한 장만 달라는 것이었다. 이 씨는 세상을 뜰 때까지 이 사진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매일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씨는 사제 생활에 사사로운 가족의 일이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평생 아들에게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들 주교가 지금 기도를 할 거야” “아들 주교가 책 번역할 시간이야” 같은 말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곤 했다는 것.

여든이 넘은 뒤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아들 곁에서 살 수 있게 된 이 씨는 1995년 6월 꽃동네 인곡자애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오 신부에게 “죽어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며 사후 안구 기증 의사를 밝혔다.

이 씨가 세상을 뜬 뒤 유언대로 안구 기증을 할 때 정 추기경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두 눈을 적출하는 수술 현장을 끝까지 지켜보며 아들의 마지막 도리를 다했다.

정 추기경은 어머니의 장례를 마친 뒤 유산을 정리해 충북 증평군 증평읍 초중리에 땅을 사 성당을 건립했고 본당 이름을 ‘성녀 루시아’로 지었다. 루시아는 로마 시대 때 두 눈을 잃고 순교한 성녀이자 이 씨의 세례명이다. 평생 기도와 선행을 통해서라도 아들의 곁에 있고자 했던 어머니는 이렇게 아들 곁에 영원히 남게 됐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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