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15년만에 시집 낸 송기원씨

  • 입력 2006년 2월 2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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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문학의 처음이자 끝이라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문인들은 습작기에 시에 매혹된다. 저명한 소설가 가운데도 시인으로 출발한 사람이 적지 않다. 중진작가 송기원(59) 씨도 출발은 시였다. 그는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그 전에 장학생으로 서라벌예대에 들어간 것도 대학 주최 백일장에서 시로 상을 받은 덕분이었다. 시집도 두 권 냈다. 그렇지만 직업으로 삼은 것은 소설가였다.

송 씨가 시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을 냈다. 15년 만의 시집 소식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엔 맛깔스러운 음식과 그에 얽힌 사연을 엮은 산문집 ‘송기원의 뒷골목 맛세상’도 냈다.

새 시집에는 꽃에 대한 시 44편이 실렸다. 송 씨는 “그동안 시를 잊고 살았는데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세 달 동안 몰아서 쓴 것”이라고도 했다.

‘찔레꽃’ ‘진달래꽃’ ‘개나리’ ‘복사꽃’ 등 꽃 이름 하나하나를 제목으로 삼았다. 왜 꽃시를 썼느냐는 질문에 그는 “살면서 계속 어두운 에너지에 시달렸는데, 그런 에너지가 사라지는 나이에 이르자 어두움이 꽃처럼 아름답게 보였다”고 답했다. 그에게는 이혼하고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의부 밑에서 자라면서 방황했던 개인사가 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내 피는 더럽다’고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기도했었다. “쉰 살 넘어서까지 자신을 부정하고 혐오했다”는 그는, 나이가 들면서 다시 시를 쓰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실제로 시 곳곳에서 부드러운 긍정의 힘이 보인다.

‘네가 나에게 준 고통이라는 것이/저토록 나의 용량을 차고 넘치는/환희로 바뀌어 버린 다음부터, 나는/더 이상 고통에 대해 알은 체 못하네’(‘함박꽃’에서) ‘지나온 어느 순간인들/꽃이 아닌 적이 있으랴/어리석도다/내 눈이여/삶의 굽이굽이, 오지게/흐드러진 꽃들을/단 한번도 보지 못하고/지나쳤으니’(‘꽃이 필 때’) 등이 그렇다.

그는 오랜만에 시를 쓰는 중 스스로를 옭아매던 어두운 자의식에서 자유로워졌다면서 “인생에서 겪은 희로애락을 통해 얻은 수확”이라고 고백했다. 내년이면 환갑이 되는 시간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소설 쓰는 작업이 고통스러웠는데 즐겁게 시를 쓰고 나니 소설도 재미있게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송 씨, “자의식을 털어버리니 이리 좋은 꽃세상인 걸요”라면서 웃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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