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디세이]10대 팬클럽과 ‘일그러진 풍선’

  • 입력 2006년 1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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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풍선’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지요? 힘껏 불어 부풀린 풍선을 띄우며 놀던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풍선 터뜨리기 경기를 했던 가을 운동회, 물풍선을 터뜨리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대학 축제…. 세대마다 추억도 다를 것입니다.

10대들에게 풍선은 어떤 의미일까요? 십중팔구 “우리 오빠”라며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H.O.T.’는 흰색 풍선, ‘god’는 하늘색, 주황색은 ‘신화’, ‘동방신기’(사진)는 펄 레드 등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풍선 색깔로 표현합니다. 이렇듯 그들에게는 풍선이 오빠들에 대한 ‘애정’이자 ‘구역’을 상징하는 도구입니다. 때때로 비슷한 풍선 색깔로 인해 팬들 간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10대들의 ‘팬클럽 문화’는 조직적이고 배타적인 것이 특징인데,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폐쇄적이어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지난주 기자에게는 ‘그들만의 이기주의, 콘서트 농락사건’이라는 e메일이 100여 통 넘게 도착했습니다. 내용인즉, 5인조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팬들이 다음 달 10일에 있을 ‘동방신기’ 콘서트 표가 매진되기 전에예매하기 위해 연습삼아 다른 가수들의 콘서트 표를 예매했다가 취소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몇몇 가수의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제때 구하지 못해 피해를 봤다며 이를 기사화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침 연예 뉴스 전문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이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고 누리꾼들은 ‘동방신기’의 팬들에게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에 ‘동방신기’ 팬클럽 측은 현재 인터넷 ‘대책회의’ 카페까지 만들어 사과와 진상 규명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부 ‘동방신기’ 팬들이 “그룹이 해체된다”는 헛소문을 듣고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해체를 막아달라”고 집단적으로 ‘민원 아닌 민원’을 제기한 일도 있어 이래저래 ‘동방신기’ 팬들에 대한 비난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여겨지는 행동을 하기는 ‘동방신기’ 팬들을 비난하는 다른 가수의 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증거 자료라며 제시한 화면 캡처 사진은 물론이고 ‘수신인’에 포함된 수십 명의 기자 메일 주소, 글자 하나 바뀌지 않고 ‘붙여넣기’한 메일, 협박은 물론이고 혈서를 썼다는 사진까지… 섬뜩하리만큼 조직적입니다. 메일에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는 온데간데없고 다른 그룹의 팬클럽 세력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만 담겨 있습니다. 조직적이다 못해 섬뜩한 생각마저 드는 10대들의 행동은 팬심(心)의 극대화일까요? 팬심의 왜곡일까요?

“우리 오빠가 최고”라며 열광하는 10대들. 그러나 그것이 맹신과 배척으로 귀결되면 결국 그토록 소중한 오빠의 이름에 오점을 남긴다는 것은 왜 모를까요? 그들이 흔드는 풍선 안에는 순수한 마음 대신 다른 그룹의 풍선을 터뜨리려는 ‘면도칼’만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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