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카메라 개성시대…손 펴고… 주먹 쥐면… “나도 얼짱”

  • 입력 2005년 10월 29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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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저 사진들 다 한 아이 사진이냐?”

대학생 김진경(20·여) 씨는 최근 가족과 케이블 음악채널을 보다가 아버지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동안 시청자 참여 코너의 하나로 TV 화면 하단에 흐르는 시청자 사진(일명 ‘셀프 카메라’)이 모두 시선은 15도 위쪽을 보고, 검지와 중지를 ‘V’ 모양으로 펴서 볼 바로 옆에 90도로 꺾어 붙인 포즈였던 것.

“선서를 하고 계신가 봐요?”

인터넷 채팅 도중 상대 여성과 사진 교환을 한 직장인 김형석(27) 씨는 사진 속의 포즈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증명사진을 보낸 자신과 달리 상대 여성은 선서를 하듯 손바닥을 얼굴에 댄 채 웃고 있었기 때문. 상대 여성은 채팅창에 웃음(^^)을 표시하며 말했다. “요새 유행하는 얼짱 포즈잖아요.”

○개인주의, 개인 미디어, 나 홀로 사진

‘90도 V자 포즈’ ‘손바닥 포즈’를 안다면 당신은 신세대. 최근 인터넷 ‘얼짱’ 카페를 비롯한 각종 사진 갤러리 사이트에는 누리꾼들이 V자를 90도로 꺾어 얼굴에 대거나 손바닥을 얼굴 앞 7∼10cm쯤에 놓고 찍은 사진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게시된다. 목적은 하나.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2000년대 ‘얼짱’ 신드롬은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등 개인 미디어가 낳은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이제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찍으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기 모습을 자기가 찍는 ‘셀프 카메라’를 즐긴다. △집단보다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는 시대 분위기 △디카 폰카 등 필름이 필요 없는 매체가 개인 포즈 개발의 값싼 연습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기술적 진보 등이 이를 돕는다.

‘셀프 카메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 크기. 사람들은 손가락이나 손바닥 등으로 원근 효과를 내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려 애쓴다. 인터넷 사이트 ‘얼짱닷컴’에 사진을 올려 봤다는 대학생 정현주(24·여) 씨는 “얼굴만 클로즈업하면 자칫 커 보일 수 있어 여러 가지 소품을 사용한다”며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얼굴이 작다 보니 요즘에는 작은 얼굴이 미(美)의 기본 덕목처럼 여겨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시대를 비추는 동창회 사진, 내리꽂기 컷

사진 속 포즈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1960, 70년대는 대부분 ‘침묵형’. 무뚝뚝하게 차렷 자세로 서 있거나 45도로 비스듬히 몸을 틀어 일렬로 선 일명 ‘동창회 사진’이 대표적인 포즈였다.

1980년대 들어 컬러TV의 등장과 교복 자율화 등으로 사진 포즈에도 역동성이 생겼다. 수학여행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인국 사진’(원근감이 주는 착시 현상을 이용해 한 손으로 사람이나 큰 물체를 떠받든 듯한 포즈)이나 여학생들이 나무를 양 손으로 껴안고 있는 ‘나무 한 아름 포즈’ 등이 인기였다.

1990년대에는 ‘X세대’ ‘신세대’ 등 기성문화에 반기를 드는 10대 문화가 힘을 얻으면서 당시 인기 힙합그룹 ‘듀스’ 등의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내리꽂는 포즈가 젊은이 사이에서 널리 모방됐다.

한국디지털아트협회 소속 사진작가 권태원(52) 씨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자아를 드러내는 것도 억압돼 있었으나 1990년대 이후 포즈에 개성이 담기기 시작했다”며 “무엇보다도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즐기는 사진이 됐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지적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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