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아름다운 일주일’ 여섯 커플의 ‘러브 액추얼리’

  • 입력 2005년 10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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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창후(임창정·왼쪽)와 선애(서영희) 커플은 가난 하지만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 사진 제공 에이엠시네마
영화 속 창후(임창정·왼쪽)와 선애(서영희) 커플은 가난 하지만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 사진 제공 에이엠시네마
“‘러브 액추얼리’ 한국판을 만들어 보자.” “어떤 사랑 얘기를 모을까?” “원수지간인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얘기 재밌겠지?” “요즘 경제가 어려우니까, 가난하지만 사랑을 잃지 않는 커플도 어필할 것 같아.” “중장년의 낭만적인 사랑으로 세대 균형을 맞춰야지.” “근데 이성 간 사랑만 있는 게 아니잖아?” “맞아, 미혼부와 딸의 세대 간 사랑도 밀어 보자.” “음, 좋기는 한데 평범한 감이 있다. 센 거 없을까. 영화에 조미료 팍팍 쳐줄 만한 거.” “수녀의 사랑은 어때?” “사회적 비난이 쏟아질 거야.” “그럼 예비수녀로 바꾸지, 뭐.” “동성애도 필요해. 하지만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논란이 목적은 아니니까.” “‘러브 액추얼리’처럼 아기자기하고 감동적인 코드로 가야겠지?” “일단 초반에 웃기고 막판엔 울려야 해. 너무 산뜻하고 딱 떨어지면 한국 관객 정서엔 민숭민숭할 거야.” “그래. 설탕 치고 소금 뿌리자. 웃기게! 슬프게!”

○ 6색 사랑 일주일간 씨줄 날줄로 엮은 사랑의 종합선물세트

6일 개봉되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혹여 이런 아이디어 회의를 거쳤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러브 액추얼리’를 한국적 정서에 맞게 유전자 변이시킨 기획 상품이란 뜻이다.

6개의 사랑이 일주일간 씨줄과 날줄로 엮인다. 숙맥인 노총각 나 형사(황정민)와 이혼한 정신과 의사 유정(엄정화)의 티격태격 사랑, 가난하지만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는 창후(임창정)와 선애(서영희)의 사랑, 철이 덜 든 노총각 성원(김수로)과 여덟 살 꼬마(김유정)의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 예비수녀 수경(윤진서)과 가수 정훈(정경호)의 아슬아슬한 사랑, 중년의 극장주 곽 회장(주현)과 공주병이 있는 만년 소녀 오여인(오미희)의 늦깎이 사랑, 그리고 외로운 이혼남 조 사장(천호진)과 남자 파출부(김태현)의 금지된 사랑…. 이들의 사랑은 스크린을 칸칸이 채워 가며 점차 커다란 사랑의 모자이크를 완성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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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민의 배꼽 잡는 사투리-엄정화의 혼신 연기 볼만

이 영화는 ‘떼거리’의 다채로움만으로도 대중의 반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할 테지만, ‘종합선물세트’가 되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훌륭한 종합선물세트란 뭔가? 사탕은 사탕답고, 과자는 과자답고, 초코파이는 초코파이다워야 하는 것. 하지만 ‘내 생애…’는 사탕이든 과자든 초코파이든, 모두 사탕이자 과자인 동시에 초코파이가 되려는 일종의 ‘보편성 강박’에 빠졌다. 다시 말해, 영화는 에피소드들이 각각 독특한 맛을 내도록 세공(細工)을 들이는 대신 몇 개의 확실한 감정 선을 화끈하게 부각시키는 쪽을 택한다. 소재의 버라이어티가 감정의 버라이어티로 이어지지 못한 채 행복하거나 슬픈, 한두 개의 대표 감정으로 거칠게 수렴되는 것도 이 영화의 ‘실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감정 선이 강한 에피소드에 기울다 보니 일부 에피소드(예를 들면 노총각과 꼬마의 사랑이나 동성 간 사랑)는 편집과정에서 내용을 필요 이상으로 잘라낸 듯 설명 부족을 드러낸다.

황정민은 이제 누구도 말릴 수 없을 만큼 물이 올랐다. 이번에는 배꼽 잡는 경상도 사투리를 쏘아 댄다. 엄정화는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늘 고맙다. 사랑하는 남자의 뺨에 침을 질질 흘리는 윤진서는 ‘미친 사랑’을 연기하는 데는 수준급이다. 하지만 임창정의 경우 궁핍해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투의 눈물은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연출한 민규동 감독의 두 번째 장편.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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