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박찬숙의 힘… 女風아, 불어라

  • 입력 2005년 9월 2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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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박찬숙(46)과 중국의 랑핑(郎平·44). 이들은 1980년대 세계 여자 농구와 여자 배구를 주름잡았던 슈퍼 스타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나란히 조국에 은메달과 금메달을 안겼다. 박찬숙은 김화순 성정아와 함께 한국 올림픽 사상 첫 구기종목 은메달을 이끌었고, 랑핑은 남자 같은 폭발적인 스파이크로 우승을 이끌었다.

랑핑은 그 뒤에도 ‘아시아의 마녀’ ‘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1985년 세계선수권 우승,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휩쓸었다.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는 강타에 백어택도 자유자재였다. 1996년부터 4년간 중국여자대표팀 감독을 맡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우승, 1999년 세계선수권 2위를 일궈냈다. 그 후 잠깐 이탈리아 여자프로팀 감독으로 활약하다가 올해 2월엔 미국여자대표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찬숙은 1975년 16세인 숭의여고 1학년 때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190cm의 키에 정확한 슛으로 중국을 여러 번 울렸다. 1978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농구선수권에서 중국을 누르고 우승할 때도 그의 플레이가 큰 몫을 차지했다. 197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도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해바라기같이 환하게 웃던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그는 1985년 2월 결혼과 함께 코트를 떠나 대만에서 활동하다가 88서울올림픽 때 잠깐 태극마크를 달았다.

박찬숙이 지난달 전격적으로 한국여자농구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5월 대표팀 코치로 복귀한 지 석 달 만이다. 첫 여성 대표팀 감독이자 생애 처음 맡는 초보감독. 그는 태평양화학 코치(1992∼96년), 염광여중 코치(1997년)를 한 적은 있으나 감독 경험은 없었다.

“여자농구대표팀 감독은 오랜 꿈이었다. 결코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노력을 해온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편견을 깨부수겠다. 여성 감독은 여자 선수의 마음을 세심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

랑핑은 선수나 지도자 생활 모두 엘리트 코스만 걸어왔다. 중국 배구계가 그를 정책적으로 키운 것이다. 그는 거침이 없고 자신만만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 중국과 미국이 맞붙는 게 내가 그리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승리를 위해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박찬숙은 먼 길을 돌아왔다. 그는 오랜 꿈을 위해 스스로 몸부림치며 커 왔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풍부한 인생경험이 어려울 땐 보약이 될 것이다. 마침 그의 인생을 담은 책 제목도 ‘툭 터놓고 사는 여자’다.

한국이 여름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손기정 선생 포함)은 모두 55개. 이 중 23개를 여자선수들이 따냈다. 동계올림픽에선 11개 중 6개.

1973년 유고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 여자단체전 우승의 주역 이에리사가 4월 선수촌장에 오르기까지 32년이 걸렸다. 박찬숙은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준우승 이후 대표팀 감독까지 21년이 걸렸다.

이 촌장은 말한다. “내가 잘하고 나가야 여자 후배들한테도 찬스가 가지 않겠는가. 그 찬스를 꼭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이 촌장은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여자 배구대표팀 최광희(31·KT&G)는 최근 “한국 최초의 여성 배구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 농구 주부선수 전주원(32·신한은행)도 ‘10년 뒤쯤 국가대표팀 감독’의 꿈을 비쳤다.

왜 감독뿐이겠는가. 대한체육회장, 대한축구협회장,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여성은 하늘이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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