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 입력 200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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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촛대바위. 독도는 본섬인 동도와 서도 외에도 78개의 돌섬과 암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사진 제공 웅진 지식하우스
독도의 촛대바위. 독도는 본섬인 동도와 서도 외에도 78개의 돌섬과 암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사진 제공 웅진 지식하우스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주강현 지음/540쪽·1만8000원·웅진 지식하우스

조선 숙종조, 에도의 바쿠후(幕府)로부터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확약받았던 안용복. 그는 끝내 귀양살이로 내팽개쳐졌다. 제멋대로 국경을 이탈하고 외교문제에 개입하는 월권을 저질렀다는 것.

조선 성종조 울릉도를 개척했던 김한경은 극형에 처해지고 그의 딸은 노비로 팔려갔다. 있지도 않은 울릉도의 실재를 주장해서 백성과 국왕을 기만했대서다.

6·25전쟁의 와중에 독도를 침범한 일본인들을 온몸으로 막아낸 홍순칠 의용수비대장은 1980년대 초반 정보기관에 끌려가 곤욕을 치러야 했다. 북한에서 그를 영웅 대접하는 방송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통탄한다. “바다를 지켜온 자, 그네들은 예외 없이 죽음을 당하거나 죽음 직전으로 내몰렸으니 어떻게 이런 역사가 있는가?”

15세기 대(大)항해시대의 거친 파도가 전 세계를 뒤덮고 마침내 한반도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바다를 외면하고 있었다. 바다는 우리에게 그저 변방이었다. 바다사람들은 천대받는 ‘갯것’들이었다.

그러나 일본과 제국주의 열강들에 바다는 광대한 가치를 가진 국가경영의 중심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한반도 역사를 요동치게 했던 모든 열강들은 해양세력이었으니 바다를 홀대했던 역사의 대가는 쓰라렸다.

근대 이후 한국사의 비극과 굴절의 원인은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반(反)해양적 사고와 그 인식의 한계, 그것이 제국과 식민의 명암을 갈랐다!”

정부 수립 직전과 6·25전쟁 중에 일어난 미군기의 독도 폭격사건에서 미묘한 국제정치학적 함의를 읽어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독도 폭격은 독도 영유권 문제와 깊숙이 관련된다는 것.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독도는 미군의 해상폭격 연습지로 지정돼 있었으니 일본은 이렇게 해서라도 독도를 한국 영토에서 빼돌린 뒤 나중에 돌려받을 속셈은 아니었을까?

민속학자인 저자는 희귀한 사진자료와 그림, 지도를 곁들여 ‘해양을 통한 침략사’, 한반도와 아시아를 둘러싼 ‘제국과 식민의 바다’를 눈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사쓰마의 영국 유학생들’이나 ‘이와쿠라 사절단’ 같은 사진은 세계사진사에서도 주목되는 명품.

그리고 메이지유신 정부의 조선침략 전략회의 장면을 담은 ‘정한의논도(征韓議論圖)’를 보라. 흡사 도마 위의 생선토막을 나누듯 한반도를 내걸고 흥정을 벌이고 있으니 어찌 솟구치는 분노 없이 그림을 대하랴.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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