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펴낸 가수 이적 “책든 제모습 어울리나요”

  • 입력 2005년 6월 30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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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KBS 스튜디오에서 소설을 낭독하는 가수 이적 씨. 권주훈 기자
29일 KBS 스튜디오에서 소설을 낭독하는 가수 이적 씨. 권주훈 기자
“독일 동화 가운데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있지요. 피리 부는 사나이는 마을을 괴롭히던 쥐떼들을 피리 소리로 몰아냅니다. 하지만 약속한 대가를 못 받자 피리를 불어 마을 어린이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지요. 오늘은 왠지 그 사내가 생각납니다.”

29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제1스튜디오. KBS 1TV ‘낭독의 발견’(7월 13일 오후 11시 35분 방송) 녹화가 시작되자 MC 정지영 씨가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를 꺼내며 가수 이적(31) 씨를 소개했다.

이 씨 이름인 ‘피리 적(笛)’ 자에서 착안한 소개 멘트인 동시에 이 씨의 삶에서 풍겨 나오는 독특한 향취를 연상시켜주는 말이었다. 이 씨는 이날 노래가 아니라 소설을 낭독하려고 이 스튜디오를 찾았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지난달 10일 펴낸 환상소설집 ‘지문 사냥꾼’(웅진지식하우스)을 통해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한 달 반 동안 5만 명의 독자를 자기 이야기 속의 몽상(夢想) 안으로 불러들였다.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가 문학으로 잠깐 ‘외출’한 줄로만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들에겐 놀라울 정도의 반향을 부른 것이다.

이 씨는 이날 ‘지문 사냥꾼’에 수록된 작품 가운데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단편 ‘제불찰 씨 이야기’의 제1장을 낭독했다.

제불찰 씨는 현실에 눌리고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하면서 점차 몸이 작아져 나중에는 사람들의 귓구멍에 쏙 들어갈 정도가 된다. “제불찰 씨는 의뢰인의 귀지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직업이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접촉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여긴 것이다”라고 낭독을 끝맺으며 이 씨는 슬쩍 웃었다.

제불찰 씨는 나중에는 귓구멍을 통해 의뢰인의 뇌 속으로 탐험을 간다. 이 씨가 그려낸 뇌의 풍경을 읽어보면 화가 달리나 마르그리트의 상상화를 보는 것처럼 화려하면서 상징적이다. 트라우마(과거의 정신적 상처)와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뇌 속에는 검은 버섯이 피어 있고, 코뿔소가 여기저기를 들이받는다. 낭떠러지와 작은 동굴이 있는가 하면 거대한 나방 떼가 날아다닌다. 이 씨가 지은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그는 3형제 가운데 둘째다) 같은 노래의 뛰어난 가사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씨는 낭독회가 끝난 뒤 머리와 팔뚝을 연방 긁적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왜 이렇게 (책의) 반응이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가수로 좀 알려져서겠지요.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놓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는 환상소설집을 낸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원래 (마술적 리얼리즘을 쓰는) 마르케스나 보르헤스, 카프카를 좋아했어요. 이스라엘 작가 에프라임 키숀이나 미국 감독 우디 앨런의 글들도 재미난 게 많아서 즐겁게 읽었어요.”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싣곤 했던 소설을 모아 책으로 펴내려고 할 때 ‘가수가 이래도 되나’ 하고 많이 고민했다”며 “하지만 어머니가 여러 번 읽고 ‘읽을 때마다 다른 게 보인다’며 격려해주셨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나이듦에 대하여’ 등의 책을 펴낸 여성학자 박혜란 씨다.

이 씨는 가수가 된 지 올해 10년째다. “가을에 새 앨범인 패닉 4집을 내놓으려고 해요. 요즘에는 곡을 마무리지어 가고 있어요. 제가 만든 이야기에 곡을 붙인 뮤지컬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마흔이 되기 전에 말이지요. 이제 8년 정도 남았네요.”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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