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경리 선생과 그의 ‘하숙생’

  • 입력 2005년 6월 16일 03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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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시 오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토지문화관의 장독대 앞에서 박경리 씨(앞)와 예술가들이 모처럼 여름볕을 쬐고 있다. 왼쪽부터 최낙용 김용우 이윤설 청쉐 박지산 이광모 씨. 박 씨는 “가끔 작가들이 책을 보내오는데, 작가의 말 한 귀퉁이에 ‘토지문화관, 고맙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면 기쁘다”고 말했다. 원주=신원건 기자
강원 원주시 오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토지문화관의 장독대 앞에서 박경리 씨(앞)와 예술가들이 모처럼 여름볕을 쬐고 있다. 왼쪽부터 최낙용 김용우 이윤설 청쉐 박지산 이광모 씨. 박 씨는 “가끔 작가들이 책을 보내오는데, 작가의 말 한 귀퉁이에 ‘토지문화관, 고맙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면 기쁘다”고 말했다. 원주=신원건 기자

《원로 작가 박경리(79) 씨의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집 앞마당에는 100개도 넘는 ‘장독 일가(一家)’가 놓여 있다. 오래 된 것은 만든 지 100년이 넘는다고 한다. 취미 삼아 독을 모아온 어떤 회사 사장이 “내가 갖고 있으면 깨질 일만 남은 것 같다”며 이곳으로 옮겨왔단다. 박 씨는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장독이 다 모여 있어요” 라면서 독 뚜껑을 열어 가득한 된장을 흐뭇하게 내려다봤다.》

박 씨의 자택과 울타리를 맞댄 곳에 토지문화관이 있다. 이곳에는 세련되게 만든 회의실과 세미나실이 있어서 예술단체나 대학교에서 빌려 쓰곤 한다. 하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올해로 문을 연 지 5년째인 ‘창작실’이다. 이곳에는 앞마당의 장독들처럼 여러 분야, 여러 곳에서 찾아온 예술가들이 산다.

9일 기자가 찾았을 때는 중국 베이징에서 온 여류 시인 청쉐(程薛)를 비롯해 소설가 김용우, 가수 김민기, 영화감독 이광모 최낙용, 극작가 이윤설, 시나리오 작가 박지산 씨 등 11명이 세 달 안팎 체류 예정으로 머물고 있었다.

이들은 13평짜리 각방인 ‘창작실’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그 분위기는 “고시원에 가깝다”는 게 이광모 감독의 말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

지난해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한 극작가 이윤설 씨는 4월에 이곳으로 와서 벌써 작은 결실을 하나 맺었다. 여기서 쓴 희곡 ‘불가사의 숍’이 국립극장의 신작 희곡 페스티벌 작품 공모에 당선된 것이다. 이 희곡은 아기들을 사고파는 가게에 대한 것인데 “그렇게 엽기적인 이야기가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잘 떠오르더냐”고 물어보았다.

“여긴 새 소리만 있고 밤낮으로 고요해요. 모든 걸 정지시켜 놓거나 슬로모션으로 떠올려볼 수 있어요. 드라마를 이리저리 내 맘대로 다뤄보기에 좋지요.”

이 감독은 ‘아름다운 시절’에 이은 두 번째 영화 시나리오 초고를 8월까지 써내려고 한다. 그는 “박경리 선생님은 우리 어머니보다 여덟 살이 많다”며 “아침에 스님들이 쓰는 나무 그릇인 발우에 채소 반찬이 나오는데 박 선생님이 해주신 것이다. 우리끼리 ‘밥이 왜 이렇게 다냐’는 말을 자주 한다. 과식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 씨는 나물도 무치고, 멸치도 볶고, 두릅도 씻어 보낸다.

2001년 이 ‘창작실’이 문을 연 뒤로 이곳을 찾았던 문인과 예술가들은 박완서 강석경 박범신 고진하 씨 등 80명이 넘는다. 박경리 씨는 “이들의 작업을 돕기 위해 나 또한 문예진흥원과 강원도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박 씨의 외손자인 김원보 씨도 이곳에서 작업을 했다. 김 씨는 인터넷 소설 ‘엑시드맨’을 책으로 펴내기 위해 몇 년째 작업 중이다. 박 씨는 김 씨의 소설을 읽고 평을 해주곤 하지만 “외손자라고 봐주면서 조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들을 위해 밭 500평을 손수 일구고 있다. 그는 “몸이 안 좋아 마음먹은 대로 일하지는 못한다. 가끔 우황청심환을 먹는다”고 말했다. 밭에는 무엇을 심었을까?

“고추 감자 옥수수 배추 열무 당근 아욱 근대 들깨 토마토 가지 오이 호박….” 박 씨는 한참 동안 손가락으로 꼽았다. “지금이 채소 가꾸는 재미가 한창일 때예요. 초봄에 눈이 날 때는 애가 탈만큼 안 자라는데 이제부터는 쑥쑥 자라는 게 눈에 보여요.”

‘글 농사’보다 밭농사에 훨씬 심취한 듯한 모습이다. 요즘은 생태계 보전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밤마다 조금씩 쓰고 있는데 나이가 들어서 인지 진전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채소를 가꾸다가 벌레에 물리기도 하고, 독초에 베이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숲에서 일하다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다. 1주일에 한번씩은 재래시장인 원주시내 중앙시장을 찾아가 돼지고기와 닭, 생선, 오징어 같은 작가들의 먹을거리를 사온다.

대하소설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등을 써오면서 겪은 글쓰기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일까. 박 씨는 후배 예술가들의 작업을 도와주는 일을 한없는 기쁨으로 여기는 듯 했다. 그럼에도 박 씨는 “나는 해주는 게 거의 없다”고 말한다.

“저는 작가들 잘 안 만납니다. 제 할 일 하고, 그 사람들 할 일 합니다. 누가 들어왔는지, 나가는지 잘 모릅니다. 인사도 못하게 하니까, 처음에는 섭섭해 할 거예요. 하지만 나중에는 이게 더 편하구나 하는 걸 알 게 됩니다. 서로가 자유로워야지 글이 나오니까요.”

원주=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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